시54 여행 누가 날 찾거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다고 전해 주오. 여행지가 어디냐고 끝까지 묻거든 초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고향의 얼굴이 자꾸 아른거려 떠났다고 말해 주오. 먼 훗날 다시 돌아와 긴 여행의 보따리를 풀어놓으리라. 2023. 2. 4. 내 님은 선녀 불면증에 시달려 벌건 눈빛을 번득이는 도시. 난파되어 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이리저리 채이는 영혼의 물결에 휩쓸려 길모퉁이 낡은 술집에서 '위하여'를 외치는 나의 전생은 나무꾼. 가쁜 숨을 허덕이며 게걸스런 춤을 추어대는 도시. 아침 이슬보다 더 맑은 영혼의 몸짓으로 다가와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긴긴 입맞춤을 해주는 내 님의 전생은 선녀. 화려한 무대 옷을 걸치고 아름다운 몸매를 과시하는 여배우의 몸에선 욕망과 탐욕에 절인 매캐한 석유 내음새가 나지만 해맑은 웃음으로 다가와 잠자는 나의 감성을 일깨워주는 내 님은 초록화의 향기러운 내음새가 배어 있다. 2023. 2. 3. 허튼소리ⅩⅥ<상실의 꿈> 낙엽 떨어짐에서 새벽을 여는 종소리에서 시간의 흐름을 보며 살아 있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쉰다. 갈가마귀의 거치른 울음소리가 귀를 어지럽힌다. 죽음을 찬미하는 악마의 울음소리.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있다. 어린 시절 꿈꾸던 이상은 망각의 늪 속에 빠진 곤충처럼 허우적거리며 달려든다. 하지만,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오랜, 병상의 싸움으로 하얘진 몰골은 오늘도 시간과 싸우며 또 한 번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2023. 2. 2. 아가야, 봄이 오누나 아지랭이 찾아와 얼어붙은 땅 위에 생명의 입김을 불어 넣는다. 아가야, 기지개를 마음껏 펴라. 물질만능주의의 늪에서 허덕이는 어른들은 계절의 오고감에 둔감하다만 아가야, 비바람이 새순을 돋게 함을 기억하거라. 초록별님 다가와 신비로운 동화 나라 이야기 들려주거든 아가야, 두 귀를 쫑긋 모으고 들어보렴아. 황금에 눈 멀고 귀 먼 어른들은 고향의 전설을 까맣게 잊고 비틀거린다만 아가야, 이 세상엔 황금보다 소중한 것이 많이 있단다. 2023. 2. 1. 조카의 웃음소리 따사로이 내리쬐는 햇빛을 받으며 소르르 맑은 눈을 감는 조카의 얼굴은 어릴 적 나의 얼굴. 방긍방글 웃음지며 고사리 손 내미는 귀여운 조카의 손은 어릴 적 나의 손 험난한 사회에 시달려 지칠 대로 지친 나에게 어린 조카의 웃음소리가 크게 확대되어 다가선다. 2023. 1. 31. 나비 봄의 전령은 동장군의 심술에 움츠렸던 우리네 마음을 활짝 열어주었다. 삼보에 귀의하려는 불심처럼 흥겨운 콧노래가 절로 나는 포근한 봄날의 오후. 겨우내 덕지덕지 묻었던 풍설을 털어내고 꿈에 그리던 고향 찾는 발걸음이 줄을 잇는다. 민둥아리 산들은 초록 옷깃을 펄럭이며 우리네를 반기고 꽃망울의 웃음보다 화사한 고향의 얼굴엔 사랑이 넘쳐흐른다. 2023. 1. 30. 허튼소리ⅩⅤ<봉산탈춤을 보며> 한 발 한 발 곱게 내밀며 춤을 추는 상좌님 모습. 덩실덩실 어깨춤 추는 총각탈의 팔목중 춤. 아! 우리 것이다. 관중들이 박수를 치고 열렬히 환호하면 춤꾼들은 흥이 나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네. 우리들은 탈춤을 보며 우리 것의 멋을 배우고 다가오는 미래를 향해 다시 한 번 힘을 모은다. 사자탈의 공연 끝나고 말뚝이 등장하는데 공연장은 덥기만 하니 춤꾼들은 더욱 덥겠지. 아! 어쩌면 좋아. 관중들이 박수를 치고 열렬히 환호하면 춤꾼들은 흥이 나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네. 우리들은 탈춤을 보며 우리 것의 멋을 배우고 다가오는 미래를 향해 다시 한 번 힘을 모은다. 2023. 1. 29. 삶의 교차로에서 가는 사람, 오는 사람 삶의 교차로에서 지나온 반평생을 되돌아본다. 이미 지워져버린 발자국이 너무 아쉬워 되돌아가려 하지만 그 곳은 갈 수 없는 동토의 나라.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삶의 교차로에서 지나온 반평생 거울삼아 새로운 발걸음 내딛는다. 2023. 1. 28. 퇴색되어 버린 꿈 아침이 기지개를 편다. 한여름의 더위먹은 강아지처럼 허덕이는 하루의 시작. 어린 시절 꿈꾸어 오던 삶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다. 눈부신 아침 햇살을 보듬으며 미래를 설계하는 건축가의 꿈이 이미 퇴색된 것도 모르는 채 땀과 짜증으로 반복되는 하루. 삶의 수레바퀴에 실려 쳇바퀴 도는 두 발 달린 짐승은 하루 세 끼를 해결하기 위해 뒤돌아볼, 한치 앞을 내다볼 시간도 갖지 못하고 무조건 달리기만 한다. 2023. 1. 27. 공허(空虛) 창공을 자유로이 날으는 새들이 미치도록 부럽기만 한 하루가 마감을 고하려 한다.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낯선 생의 골짜기로 끌려가고 있다는 강박감에서 벗어나고 싶다. 가슴을 저미도록 밀려오는 고독감의 시원은 대체 무엇. 한 잔의 술로 달래기엔 너무 피폐해 버린 감정을, 추스를 수 없어 들이키는 폭주. 쉬임없이 돌아가는 땅덩어리에 맨정신으론 중심을 잡을 수가 없다. 님이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삶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시절은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숨어버린 것일까? 나락의 늪으로 뛰어들지 못하는 무력감에서 헤어나고 싶다. 가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의 시원은 대체 무엇. 한 잔의 술로 축이기엔 너무 메말라 버린 사랑을, 지필 수 없어 들이키는 폭주. 이별은 또 하나의 시작이라 하지만 님이 없.. 2023. 1. 27. 이전 1 2 3 4 ··· 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