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 자영업 정글에 뛰어든 사람은 하루 종일 일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휴일도 사치로 치부되어 일 년 365일 중 360일 이상을 일하므로 틀린 말은 아니다. 평일에 가게를 오전 10시에 오픈한 뒤 오후 10시에 마감하고, 근로자들이 쉬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일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 그지없다.
음식점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직장인보다 시간적인 여유가 적은 것은 사실이다. 1박2일이나 2박3일 등 장시간의 공백을 만들어내는 것은 큰맘을 먹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하루 24시간 중 몇 시간의 짬을 만들어내는 것은 비교적 쉽다.
사람들의 배꼽시계는 대체로 일치하여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 그리고 오후 5시부터 오후 7시까지를 하루 중 음식점이 가장 바쁜 시간대로 만든다. 이 시간은 고객 맞이에 올인해야 하는 시간이니 여유는 꿈도 꿀 수 없다. 또 오픈준비, 마감준비, 재료준비, 청소 등에 소요되는 4시간도 여유를 가지기 힘든 시간이다. 그러나 하루 영업시간 중 이 8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4시간은 마음만 먹으면 활용할 수 있는 여유시간이다.
하루 4시간이면 일만 시간의 법칙을 충분히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이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런 유용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데도 자신은 휴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무시하고자 한다면 더 이상 다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모습으로 스스로 변화하기를 간절히 원한다면 내 이야기에 계속 집중해주기를 바란다.
나는 이 4시간을 이용하여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는 100퍼센트 실화이며 5학년 중늙은이가 도전하여 성공한 사례이니만큼 의심하지 말기 바란다. 첫걸음을 내딛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내딛으면 한 걸음이 열 걸음이 되고, 나아가 백 걸음이 될 수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마음만 굳게 먹고 실행한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내가 주택관리사 자격증 취득에 관심을 가진 시기는 자영업 정글에 뛰어든 지 3년이 되던 해 여름이었다. 방학기간이었는데 학기 중과 달리 배꼽시계가 울리는 시간에도 찾아오는 고객이 적어 특별히 바쁜 시간대가 없었다. 남아도는 시간을 그냥 허비하기보다는 유익하게 활용하자고 생각했다. 이순이 되어서도 음식점 자영업 정글에 종사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보험을 든다는 마음으로 자격증을 취득하자고 마음먹었고, 그중에서도 주택관리사 자격증이 내 레이더 망에 포착됐다.
우선 탐색기간을 갖기로 했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잽을 날려보았다. 서점에 가서 핵심요약집과 1차 실전모의고사 문제집을 구매했다. 민법을 풀어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서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희망을 갖고 회계원리에 도전했다. 회계원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웠으나 매일 조금씩 진도를 나갈 정도는 됐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차 마지막 과목인 공동주택시설개론은 민법이나 회계원리보다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했으나 예상과 달리 가장 어려웠다. 요약집만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탐색전을 끝내고 접근전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인터넷 강의를 들을까 했으나 비용도 비용이지만 시간 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기본서를 구입하여 자율학습을 해보고 도저히 이해되지 않으면 나중에 인터넷 강의를 듣기로 결정했다. 요약집과 달리 기본서는 세세하게 설명이 돼 있어서 내용을 이해하기가 쉬웠다. 내친김에 회계원리도 기본서를 구입하여 다시 공부했다. 굳이 인터넷 강의를 수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1차 과목을 공부해 보니 욕심이 생겼다. 2차 과목인 주택관리관계법규와 공동주택관리실무도 기본서를 구입하여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차와 2차를 병행하는 것은 시간상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차를 접고 1차에 올인하기로 작전을 바꿨다.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니 예상대로 시간이 부족했다. 방학이 끝나고 학기가 시작된 후로는 짬을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전략을 세웠다. 모든 과목을 완벽하게 공부하는 것은 시간 관계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민법 70점, 회계원리 50점, 공동주택시설개론 70점을 목표로 세우고 공부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1차 시험일이 다가왔다. 초조함을 떨쳐내고 시험장으로 씩씩하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민법 문제를 먼저 풀었다. 목표한 점수는 충분히 나올 것 같았다. 이어 공동주택시설개론 문제를 풀었다. 예상보다 어려웠다. 가슴이 뜨끔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회계원리 문제를 풀어나갔다. 다행히 회계원리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정답을 체크해 보았다. 민법은 목표한 점수를 상회했으나 공동주택시설개론이 목표한 점수에 턱없이 모자랐다. 천만다행으로 회계원리가 목표한 점수를 상회하여 합격권에 안착할 수 있었다.
다음날부터 곧바로 2차 과목에 도전했다. 이왕 시작한 거 한 번에 2차까지 통과하자는 욕심이 생겼다. 문제지를 먼저 풀어보았는데 어려웠다. 모든 게 생소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이 떠올랐다. 기본서를 충실히 공부하고 문제지를 풀기로 방향을 바꾸었다.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2차 시험일을 9월 14일로 알고 공부했으나 실제 시험일은 9월 28일이었다. 시험일을 착각한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덕분에 전화위복이 됐다. 2주의 시간을 더 얻은 것이었다. 지난 3년치 문제지를 인터넷에서 찾아 출력해서 풀어보았다. 모두 80점 이상이 나왔으며 만점을 받은 과목도 있었다. 왠지 모를 자신감이 마구 솟아올랐다. 하지만 다음해에 똑같은 공부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에 방심하지 않았다.
2차 시험일이 여느 날과 다름없이 화사한 미소를 던지며 다가왔다. 솔직히 1차 시험일보다 곱절은 긴장했다. 주택관리관계법규는 술술 풀렸다. 대략 30문항을 맞힌 것으로 계산됐다. 마음이 흡족했다. 하지만 공동주택관리실무를 풀어나가면서 당황했다. 문제가 의외로 까다로웠다. 지난 3년치 문제지 풀이에서 만점을 받았던 과목이었기에 당혹감이 더 컸다. 하지만 주택관리관계법규에서 벌어놓은 점수를 생각하며 희망을 갖고 마지막 문제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날 밤 집에서 정답을 체크했다. 주택관리관계법규는 예상했던 데서 3문항이 모자란 27문항을 맞혔다. 그때의 당혹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공동주택관리실무는 더 형편없었다. 21문항밖에 맞지 않았다. 2과목을 합해서 남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평균 60점이었다. 최종 점수는 예상보다 1문항 더 맞혀서 61.25점으로 턱걸이했다. 장님이 문고리를 잡은 격이었지만 인간승리라고 으스대고 싶었다. 쉬운 것처럼 보였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튼 자영업 정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생각했다.
먼 훗날을 대비하는 보험용으로 도전한 시험이었지만, 이왕 합격했으니 그쪽 분야의 취업 기회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다. 어렵게 시간을 만들어 3박4일의 주택관리사보 사전관리교육을 수료했다. 당해 연도 합격자만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주택관리업체들의 공채에도 응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반겨주는 곳이 없었다. 씁쓸했다.
방향을 바꾸어 공동주택 자치관리기구에서 모집하는 관리사무소장직에 지원했다. 서류전형을 통과하고 면접전형에 응시하라는 연락이 왔다. 하지만 나는 고심 끝에 포기하기로 했다. 열악한 급여 때문이었다. 그쪽에서 제시한 급여는 월 200만 원이었다. 당시 우리 가게의 주방직원 급여가 160만 원이었다. 고작 40만 원 더 받자고 가게 일을 내려놓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랑 같지만 그때 나는 두 사람 몫을 하고 있었다. 내가 빠지면 한 사람만 보완하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기에 신중해야 했다.
새로운 기회를 눈앞에 두고 돌아서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미련을 접기로 했다. 자영업 정글은 아직 나를 놓아줄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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