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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정글/5학년 중늙은이의 고군분투

운명처럼 만난 창업 아이템

by 유일무이태인 2023.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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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었다. 어떤 아이템을 선정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이템은 널려있었지만 그래 바로 이거야!’ 하며 무릎을 탁 칠만한 것은 딱히 없었다. 자영업 정글에 뛰어들면 부딪치게 되는 첫 번째 난관 앞에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처음 만지작거린 카드는 공인중개사였다. 나름대로 전문직이며 평생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공인중개사라는 직업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 카드를 선택하지는 못했다. 무경험자가 시작하기에는 벽이 너무 높아 보였다.

 

많지는 않더라도 매월 일정 금액의 수익이 보장된다고 생각했다면 아마 두 눈 질끈 감고 도전했을 것이다. 당시 곤이가 대학생, 이쁜공주가 중학생이었다. 다달이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생활비 외에도 학기마다 곤이의 학비로 쓸 목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당시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베테랑들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초보 중의 초보인 내가 그런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볏짚을 들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격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 만지작거린 카드는 프랜차이즈 제과점 창업이었다. 제과점은 1365일 운영해야 하는 점과 오전 7시부터 오후 12시까지 하루 평균 17시간 이상을 매장에 매달려야 하는 고충이 따르지만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된다는 점이 우리 부부를 유혹했다.

 

밥보다 빵을 더 좋아하는 전 여사가 사업설명회에 참석하는 등 적극성을 보였으나 이 또한 인연이 닿질 않았다. 우리는 그때 거주하고 있었던 곳인 안산을 비롯하여 가까운 시화, 군포, 인천 등에서 매물로 나온 매장들을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개설비용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컸고, 안정적인 수익에 대한 믿음을 잃게 하는 매물이었다.

 

우리가 손을 놓은 결정적인 이유는 리뉴얼에 대한 부담감이었다. 제과점은 점주의 의지와 상관없이 싫든 좋든 정기적으로 리뉴얼을 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리뉴얼 비용 부담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 서방이 번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했다. 곰이 되긴 싫었다.

 

공인중개사와 제과점 창업이 차례로 큰 벽에 부닥쳐 무산된 후 아이템 선정은 깊은 수렁에 빠졌다. 사실 우리 부부는 자영업에 뛰어들기로 결정하기에 앞서 2년 전부터 수도권에서 개최되는 창업박람회 현장을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어진 시대에 살아남게 해줄 대안을 찾아 계속 발품을 팔았다. 눈길을 끄는 부스가 몇몇 있었으나 마음을 확 사로잡는 아이템은 없었다. 가슴 아프게도 우리가 다닌 창업박람회는 대부분 거기서 거기, 도긴개긴, 오십보백보였다.

 

아무튼 아이템 선정은 절대명제였기에 가만히 앉아 기다릴 수 없었던 우리 부부는 현장을 직접 뛰어다녔다. 떡볶이 전문점, 만두 전문점, 커피 전문점, 토스트 전문점, 아동복 전문점, 독서실, 생활용품점, 건강식품점 등등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많았으나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하고 만약 차선도 없다면 차악을 선택하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사오정의 아픔을 겪고 창업에 나선 중년이 선택하는 차악은 헤어나기 힘든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과 같다.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을 투자하는 창업이다. 자칫하면 빈곤층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텐데 차악을 선택할 수는 없지 않은가. 순간의 선택이 좌우하는 10년보다 더 긴 남은 인생 전체가 걸려있다. 오직 최선의 선택만이 미래를 보장해준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곤이 아빠! 저기 한스델리라고 보이지? 돈가스, 파스타, 스테이크……. 메뉴가 다양하네. 왠지 끌리는데……. 저 회사에 대해 알아봐 줘.”

 

전 여사가 가리킨 곳은 한스델리 논현점이었다. 한스델리와의 인연은 이렇게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됐다. 시간 나는 대로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던 우리 부부는 어느 일요일에 인천 송도 신도시를 한 바퀴 돌아보고 귀가하던 중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인천 논현동 신도시도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논현동은 어린 시절에 보았던 촌티 나는 모습을 완전히 감추고 있었다. 택지개발을 거쳐 신도시로 자리 잡은 논현동의 환골탈태는 색다르게 다가왔다. ‘하늘나라에 계신 부모님이 이곳에 땅을 사두셨다면 우리 집이 졸부가 되어 내가 이렇게 거리를 방황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라는 망상을 하고 있을 때 전 여사가 그 망상을 깨뜨린 것이었다.

 

귀가하자마자 한스델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회사 현황을 살펴보니 2004년 서울 신촌에서 시작하여 5년 만에 200여 개의 가맹점을 두게 된 탄탄한 회사였다. 메뉴도 돈가스, 스테이크, 파스타, 라이스, 그라탕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돼 있었고, 가격도 4~5천 원대로 저렴했다. 골라 먹는 재미와 부담 없는 가격대가 도전해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평일에 서울 본사에서 사업설명회가 열린다고 하여 내친김에 시간을 내어 방문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신청자가 없어 설명회가 취소되었단다. 사전에 전화를 걸어 확인하지 않은 것이 실수라고 생각하고 돌아서려는데 이사 한 분이 먼 길을 오셨으니 개인상담을 해주겠다며 회의실로 안내했다.

 

그분은 점포개설 절차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었으며, 내가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었다. 답변 가운데 한스델리의 음식은 내 아이, 내 가족을 생각하며 만드는 좋은 음식이라는 설명은 회사에 대한 신뢰감을 심어주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회사의 리뉴얼 정책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사는 가맹점주들의 생각을 무시하는 리뉴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그런 걱정은 내려놓으라고 했다. 상담을 받고 나오면서 더 이상 아이템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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