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일터는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함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집에서 30분 이내의 거리에 위치한 가게를 구하라는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목만 좋은 곳이라면 집과 가게의 거리가 1시간이 걸리든 2시간이 걸리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안산 거주지에서 인천 가게까지의 거리는 35킬로미터였다. 도로가 막히지 않는 시간에는 40분 정도 걸렸지만 조금이라도 막히면 1시간 20분 정도 걸렸다. 하루에 길거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족히 2시간은 됐다.
35킬로미터는 출퇴근하기에 가까운 거리가 아님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특별히 그 거리를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은 것은 그보다 더 먼 거리의 출퇴근을 4년간 경험했기 때문이다. 안산 거주지에서 전 직장까지의 거리는 37킬로미터였다. 전 직장의 업무 시작 시간은 8시였고, 업무 시작 1시간 전인 7시까지 출근하기 위해서 일어난 시간은 새벽 5시 30분이었다. 나는 그 직장을 다니며 시나브로 아침형 인간으로 변모했다. 이러한 경험이 4년간 몸에 축적되어 있었기에 35킬로미터를 오가는 출퇴근쯤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짧았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짧은 생각으로 인해 1년 동안 사서 한 고생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직장생활과 자영업 정글에서의 삶은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그 차이를 진즉에 알았더라면 그런 무모한 결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정기휴일이 있고 평일에는 아무리 늦어도 오후 8시 이전에 일을 마감할 수 있기에 피로를 풀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자영업 정글에서는 정기휴일이란 사치이고 평일에도 오후 10시까지 가게를 지켜야 하기에 피로도가 현격히 높았다.
“아빠, 나 중학교는 안산에서 졸업하고 싶어.”
고민 고민하다가 거주지를 인천으로 옮기면 모든 어려움이 단번에 해결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하지만 거주지를 옮기는 데 변수가 하나 있었다. 이쁜공주가 그 주인공이었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이쁜공주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런 공주에게 인천으로 이사 가자고 차마 고집할 수가 없었다. 이쁜공주의 두려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에 거주지를 옮기는 것은 이쁜공주가 중학교를 졸업하는 2년 뒤로 미루자고 결론지었다.
처음엔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몸의 피로도가 심각한 지경으로 쌓였다. ‘악으로 깡으로’를 속으로 수없이 외쳤으나 소용없었다. 혼자 하는 고생이라면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으나, 애꿎게 함께 고생하는 전 여사에게 미안했다. 지지리 못난 남편을 만나서, 집에서 편히 쉴 나이에 고생만 하는 전 여사가 안쓰러웠다.
쳇바퀴 돌듯이 아침 7시에 일어나 가게에 갔다가 밤 12시가 다 되어서 집에 들어오는 일이 반복됐다. 휴일마저 반납하고 강행군을 계속하자 피로가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부득이 가게와 가까운 곳에 원룸을 구했다. 가게는 비좁아서 편안히 쉴 공간이 없었다. 오전 장사를 끝내고 오후 장사를 시작하기 전까지 2~3시간의 공백이 생기는데 그 시간에 전 여사를 쉬게 하고 싶었다. 처음엔 싫다고 고개를 가로젓던 전 여사도 몸의 피곤함을 견디지 못하겠는지 마지못해 원룸을 얻는 데 동의했다.
“이쁜공주가 큰 결심을 한번 해주면 아빠와 엄마가 조금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을 텐데…….”
너무 힘이 들어 겨울방학 때 다시 한 번 이쁜공주에게 거주지를 인천으로 옮기고 싶다고 말했다. 일 년간 아빠와 엄마가 힘들어 하는 모습을 지켜본 이쁜공주가 이번에는 반대의 뜻을 비치지 않고 선선히 동의했다. 이쁜공주는 생각보다 빨리 낯선 환경에 적응했으며, 해맑은 미소로 우리를 안심시켜 주었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너무너무 대견했다.
새로 옮긴 인천 거주지에서 가게까지의 거리는 9킬로미터다. 안산 거주지에 비해 4분의 1밖에 안 되는 가까운 거리다. 아침에 길이 막히지 않으면 10분, 막혀도 20분이면 충분한 거리다. 거주지를 안산에서 인천으로 옮김으로써 원룸 임차료에 기름값과 고속도로 통행료까지 절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장거리 이동에 따른 피로를 최소화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효과였다. ‘가게와 집은 가까울수록 좋다’는 진리가 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생고생하면서 체득한 1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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