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만 좋으면 만사형통일 줄 알았다. 입지가 창업 성패의 90% 이상을 좌우한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픈 첫해에 고객들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하루하루가 즐거웠으며, 몸이 피곤해도 힘든 줄 몰랐다. 그런 대박의 조짐은 오로지 가게의 입지가 좋은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년차를 보내면서 입지가 중요하기는 하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입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가격경쟁력이었다. 오픈 첫해의 주요 메뉴는 주로 4천~5천 원의 부담 없는 가격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심지어 3천 원대의 초저가 메뉴도 있었다. 그런 메뉴의 가격경쟁력이 고객들의 진한 사랑을 가져다 주었다.
2년차에 접어들 무렵 본사로부터 원재료 가격 상승 등의 사유로 메뉴의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공문을 받았다. 당시는 구제역 발생으로 인해 사회가 어수선한 시기였다. 적게는 300원에서 많게는 1천 원까지 가격이 인상됐다. 3천 원대의 초저가 메뉴는 없어졌고, 5천~6천 원대의 메뉴로 구성이 바뀌었다. 부담 없던 가격이 조금은 부담 있는 가격으로 변한 것이었다.
처음엔 본사의 가격정책 변화가 우리 가게의 매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명철하게 분석하여 그같이 결정했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론상으로는 가격이 인상된 만큼 매출도 증가해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요인이 있다는 것은 우리네 사정일 뿐이었다. 고객들의 눈에는 우리가 사회적 현상에 기대어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은근슬쩍 가격을 인상한 것으로 보인 듯했다. 가격 인상의 후유증은 즉시 나타나지 않고 서서히 나타났고, 그래서 대처하기가 어려웠다. 메뉴판을 들여다본 후 주문하지 않고 그냥 나가는 손님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고, 매출이 야금야금 축소됐다.
위기의식을 느낀 나는 예전 가격으로 할인해서 판매하고자 했으나 본사의 반대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대신 본사에서는 세트 메뉴 판매를 제안했다. 세트 메뉴 판매는 반짝 효과는 있었으나 지속성이 없었다. 그 다음으로 돈가스 단일 품목에 한해 ‘옛날 가격 그대로’ 이벤트를 시행했으나, 이번에도 반짝 효과만을 보았다. 이후 8개 품목에 대한 ‘옛날 가격 그대로’ 이벤트, 본사에서 제안한 ‘1+1 이벤트’, 5개 품목에 대한 ‘통큰 할인 이벤트’ 등 다양한 이벤트를 시도해 보았으나 어느 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그즈음부터 본사는 신메뉴를 개발할 때에도 저가 메뉴보다 고가 메뉴 위주로 방향을 잡은 듯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때 본사는 주 고객을 학생에서 직장인과 가족으로 변경하고 있었다. 우리 매장의 경우에는 주 고객이 학생이고, 보조 고객이 가족이었다. 그러니 직장인과 가족 고객을 대상으로 한 본사의 연구개발과 가격정책이 우리 매장의 콘셉트와 맞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매출의 정체를 극복하지 못한 주된 이유였다.
“우와! 가격이 장난이 아니네요. 예전과는 너무 차이가 큰데요!”
곤이가 군 제대 후 가게와 와서 메뉴판을 보고 깜짝 놀라며 한 말이다. 곤이는 우리 매장이 예전만큼 고객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은 가격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꼬집어 말했다.
“사실 인천 시내의 다른 곳에서라면 한스델리의 가격이 주변 다른 가게들의 가격에 비해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인하대 후문 지역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지죠. 이곳에서는 한스델리의 가격이 비싼 편에 속해요. 제 친구들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먹으러 가자고 말하기에 부담스러운 가격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오픈 첫해에는 특별히 할인 이벤트를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가격을 인상한 뒤에는 할인을 하지 않으면 고객에게 외면 받을까 봐 불안해하게 됐다. 가격 인상은 아니함 만 못했다. 통큰 할인 이벤트의 효과가 반짝할 뿐 지속력이 없어 신학기를 맞이하여 이벤트를 접고 가격을 본래대로 되돌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학생들에게 진짜로 부담스런 가격이 될 수 있다는 곤이의 지적에 통큰 할인을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적어도 우리 매장의 경우에는 본사의 가격 인상은 실패한 정책이다. 개인점포였다면 어설프게 그런 가격 인상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맹점이다 보니 가격 결정에 자율권이 없었다. 만일 내가 업종을 변경하게 된다면 프랜차이즈 매장이 아닌 개인 매장을 하리라고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면 매출도 감소한다는 것을 몇 년간 몸소 체험했기에 가격만큼은 내가 정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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