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이다. 한잔 하자.”
"비도 오는데 곱창에 소주 한잔 할까?”
“소주 한잔 먹을 수 있는 여유 한번 만들어보자.”
“한잔 하자. 돈은 내가 낸다.”
가끔 친구들이 소주 한잔 하자고 연락해온다.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지만 마음뿐이다. 몸은 가게에 매여 옴짝달싹 못한다. 나는 남들보다 앞장서서 술자리를 만드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술자리의 분위기를 좋아해서 굳이 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의 호출에 적극 호응하지 못하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 때문이다.
친구들이 소주 한잔 하자고 연락하는 시간은 대개 초저녁이다. 내가 가게를 비울 수 있는 시간은 친구들이 1차를 거하게 한 다음에 2차 내지 3차를 시작할 때쯤이다. 처음에는 친구들과의 즐거운 수다를 위해 가게 마감을 빨리 끝내고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하지만 이제는 늦은 시간의 음주가무에 따르는 후유증이 걱정되어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달려 나갈 수 없다.
자영업 정글에 뛰어들기 전에는 주중에 다소 과한 음주가무를 즐기더라도 주말에 푹 쉬고 나면 월요일 출근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자영업 정글에 뛰어든 뒤로는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고 나면 늘 감기나 몸살을 앓았다. 휴식을 취할 수 없는 일상의 구조 때문이었다. 그런 일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자 소주 한잔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자영업 정글에서 고군분투하는 것이 안쓰러운지 위로주를 사주고 싶어 안달하는 친구가 있다. 아무 생각 말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술자리에 나오라고 재촉한다. 소주 한잔으로 마음의 평화를 찾으라는 친구의 조언이 고맙기는 하지만, 위로주로 시작한 것이 어느 순간 독주로 변해버릴 것이 무서워 총알처럼 나서지 못하는 나 자신이 측은하다.
자영업 정글에 뛰어들 때 1~2년만 반짝 고생하면 자리가 잡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삶에 여유가 생기고 친구들과의 술자리 또한 부담 없이 가질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나의 바람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자영업 정글은 시간이 지날수록 치열한 전쟁터로 변하고 있다. 사오정 세대가 직장에서 밀려나면서 갈 곳이 없는 그들이 자영업 정글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한정된 파이가 점점 더 잘게 쪼개지는 현실이 두렵다. 몸으로 때워야 하는 시간이 속절없이 늘어나고만 있는 것이 안타깝다.
때때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친구들과 밤새워 마시며 떠들고 싶을 때가 있다.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가끔씩이나마 모든 것을 잊고 흠뻑 취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하지만 이는 마음뿐이고 결코 내가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는 걸 스스로 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려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자주 갖지 못해도 친구들이 나를 왕따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제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반겨주는 친구들이 고맙다.
“오늘 저녁 번개 어때?”
“위로주가 생각나는 날이다.”
“난 오늘 밤 한가하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 어때?”
내가 먼저 나서서 이렇게 친구들에게 소주 한잔 하자고 연락할 수 있게 될 그날이 기다려진다. 자영업 정글에 종사하는 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일요일 하루 정도는 쉴 수 있는 업종으로 전환하는 꿈을 꾼다. 만약 기회가 닿아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게 된다면 가장 먼저 할 일 중 하나가 친구들에게 연락해 소주 한잔 하자고 권하는 것이다. 친구들아! 그때는 위로주가 아닌 축하주를 취할 때까지 마음껏 마셔보자.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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