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되세요.’
이 문구는 모 카드회사의 광고 카피로 크게 유행한 후 사람들이 새해 덕담으로 가장 많이 주고받는 인사말이 됐다. 언제 들어도 거북하지 않고, 수백 번 들어도 또 듣고 싶은 덕담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부자가 누리는 풍요로운 삶은 동경의 대상이다. 부자가 되면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질 수 있고, 먹고 싶은 것도 다 먹을 수 있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세상 어디에든 다 갈 수 있는 것 또한 부자의 특권이다.
나도 한때는 그런 부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부자란 원한다고 해서 누구나 다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 또한 부자가 되고 싶지만 되지 못한 부류에 속한다. 물론 나보다 더한 악조건의 환경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와 도전정신으로 부를 일구어낸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난 그들과 같은 길을 걷지 못했다. 전적으로 나의 부족한 능력이 만들어 낸 결과다.
내 인생에서 부자가 되기 위한 첫 번째 도전은 스포츠 분야에서 시도됐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복싱에 매료됐다. 맨주먹 하나만 있으면 그 외에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아도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끌렸다. 챔피언에게 주어지는 억대의 파이트머니와 명예는 내 두 눈을 멀게 했다. 프로복서 등용문이었던 신인왕전을 목표로 열심히 운동했다. 그러나 참가신청서도 제출하지 못하고 도전을 접었다. 내가 지닌 능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못 먹어도 고를 외쳤던 것 같다.
부자가 되기 위한 두 번째 도전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시도했다. 대학시절 우연찮게 기타를 접하게 되어, 자작곡까지 만들었다. 친구들의 호평에 혹해 내가 그 방향으로 재능이 있다고 믿게 됐다. 어쭙잖게 강변가요제에 참가했으나 예선탈락의 쓴맛을 보았다. 체계적으로 배워 익힌 음악이 아니었기에 한계의 벽에 부딪혔고 끝내 그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세 번째 도전은 억대 연봉의 샐러리맨이 되는 것이었다. 쉽지 않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낮밤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인천에 있는 2년제 대학으로부터 교직원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연금을 국민연금에서 사학연금으로 갈아탈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고지가 눈앞에 보이는 듯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모래성이었다.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진 그날 이후 억대 연봉의 꿈도 신기루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간절히 두드리면 문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간절함이 부족했는지 부자나라로 들어가는 문은 언제나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 부자의 꿈은 시나브로 희석되었고, 소시민의 일상에 묻혀 그냥저냥 살아가는 나를 먼발치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철옹성처럼 요지부동이던 부자나라의 문이 살짝 열리는 환상을 보았다. 자영업 정글 진입 첫해였다. 궁여지책으로 가게를 오픈했는데 고객들로부터 기대 이상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귀가 빠지고 나서 처음으로 정기적금이란 걸 들었다. 반세기 만에 든 적금이었으니 실로 개인사에 기록할 만한 일이었다. 오픈 첫해의 행운이 몇 년 더 지속되었다면 나는 당당히 부자나라에 들어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행운은 지속되지 않았다.
누가 그러는데, 내가 부자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타고난 운명 때문이란다. 부자의 운명은 타고나는 것인데 나는 그런 운을 타고 나지 못했기 때문에 매번 좌절하는 것이란다. 어이없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운명 타령을 떠나서도, 이제는 정상적인 루트를 통해 내가 부자나라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은 왜일까? 가끔 로또 복권을 구매하는 것은 부자나라로 들어가는 끈을 놓지 않으려는 마지막 몸부림이다. 이것을 두고 누가 탐욕이라고 흉을 본다고 해도 나로서는 부자에 대한 갈망을 생을 다할 때까지 버리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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