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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정글/자영업정글에서의 생존전략

또 다시 갈림길에 서서

by 유일무이태인 2023.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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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 갈림길에 섰다. 오른쪽 길은 5년 동안 매일 걸어온 익숙한 길이다. 그 길은 몸이 다소 부치지만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순탄한 길이다. 왼쪽 길은 전혀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이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지만 그 길에서 어떠한 광경이 펼쳐질지 알 수 없다. 몸은 왼쪽 길로 가려고 하는데 마음이 두려워 떨고 있다.

 

사장님! 오늘 당장이라도 통장에 9천만 원을 입금하겠습니다.”

 

내가 제시한 금액에서 조금 모자란 것이 흠이긴 했지만, 마음이 흔들릴 정도로 매혹적인 제안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좋다고만 하면 곧바로 통장에 입금해 준단다. 오른쪽 길에서 점점 지쳐가던 시점이었기에 앞뒤 가리고 싶은 마음이 거의 없었다. 왼쪽 길이 어서 오라고 나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본사는 변함없이 60% 매장의 콘셉트에 치중한 가격정책을 고수하고 있었다. 노동력 투입 대비 수익이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는 매출구조가 되고 있었다. 게다가 전 여사가 오후 근무까지 해야 하는 인력운용의 악순환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본사에 영업판매권을 양도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그때가 5년차 가을이었다. 내가 원하는 양도대금이 다소 과하여 양수인 찾기가 쉽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권리금 시세는 1층 매장의 경우 1억 원, 2층 매장은 1층 매장의 2분의 1 수준인 5천만 원에 형성되어 있다고 했다. 우리 가게는 2층 매장이었지만 내가 원한 금액은 1억 원이었다.

 

점주님! 7천만 원에 양수하겠다는 이가 있는데 의향이 어떠하신지요?”

 

본사에 양도 의사를 밝히고 한 달쯤 지났을 때 담당 슈퍼바이저가 매장을 방문했다. 그는 내가 원하는 금액과 차이는 나지만 7천만 원이면 괜찮은 금액이라며 내 의사를 타진했다.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내가 오픈할 때 투자한 금액은 보증금 55백만 원을 제외하고 16천만 원이었다. 그때 내 계획은 16천만 원을 다 회수하는 것이었다. 오픈 첫해의 매출이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다면 충분히 회수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매출이 정체되어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을 알면서 16천만 원 전액 회수 계획을 고수하는 것은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슈퍼바이저가 제시한 7천만 원은 받아들이기 힘든 금액이었다. 우리 가게는 A급 입지에 코너 자리라는 프리미엄 요소가 있어 기본 매출은 보장되고 있었다. 게다가 월세가 저렴한 것이 다소 매출이 정체되어도 버텨낼 수 있도록 힘이 돼주었다. 굳이 헐값으로 넘길 이유가 없었다. 내가 원하는 금액에 양수할 이가 나올 때까지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은 아니지만 혹시나했는데 역시나로 돌아온 본사의 제안을 거절한 후 더 이상 본사에 기대지 않기로 했다. 가게 주변의 부동산중개 사무소들에 정식으로 매도를 의뢰했다. 가게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으로 원매자를 찾아달라는 단서를 붙였다. 권리금 요구액도 12천만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1억 원을 불렀더니 7천만 원으로 금액이 깎였던 것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상권도 괜찮고, 코너 자리인 점도 눈에 띄네요. 저희에게 맡겨주시면 빠른 시일 안에 매매될 수 있도록 작업해 드리겠습니다.”

 

한번은 창업상담과 상가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컨설팅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심정으로 16천만 원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컨설팅 업체에서는 제안서를 잘 포장하면 어렵지 않게 양수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곧바로 작업에 들어가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컨설팅 업체와 작업하지 않았다. 성공보수금은 별도로 하고 착수금으로 2백만 원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신뢰가 가지 않았다. 착수금을 주고 나서 양수인을 만나지 못하면 그 돈은 돌려받을 방법이 없지 않은가. 매매가 성사된 다음에 수수료를 지불하는 것은 부담이 되지 않겠으나 먼저 착수금을 지불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수인은 금방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초조하거나 불안하지는 않았다. 이런 문제는 아등바등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살아간다는 태도로 가게를 계속 운영하다가 적임자가 나타나면 인수인계하면 되지 하는 마음이었다. 솔직히 내가 흘깃대는 왼쪽 길이 오른쪽 길처럼 의식주를 해결해줄 거라는 보장만 있다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양수인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은 아직 미지의 세계였기에 그저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싶었다.

 

양수인이 나타날 때까지 마냥 기다린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6년차 3월 개강 시즌을 앞두고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양수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일 년 중 가장 성수기라 할 수 있는 3월을 앞두고 있으니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변 부동산중개 사무소들에 내놓은 권리금 요구액도 1억 원으로 하향 조정했고, 지역 광고지에서 눈여겨보았던 프랜차이즈 전문 부동산중개 사무소에도 새롭게 매도 의뢰를 했다. 효과가 있었다. 프랜차이즈 전문 부동산중개 사무소에서 우리 가게를 둘러보고는 바로 이튿날 다시 찾아왔다. 우리 가게가 마음에 꼭 든다면서 매매에 관한 모든 권리를 자기네에게 넘기는 조건으로 통장에 9천만 원을 입금해 주겠다고 했다.

 

나로서는 왼쪽 길로 방향을 틀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기쁜 마음에 전 여사에게 프랜차이즈 전문 부동산중개 사무소의 제안을 설명했다. 그런데 전 여사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금액이 목표에서 10% 모자라는 것에 대해 불쾌해했으며, 이후의 왼쪽 길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곤이가 재학 중 응시한 임용고시에서 탈락하여 1년간 재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쁜공주도 대학 생활에 발을 들여놓았기에 우리에게는 여전히 생활비 외에 교육비도 필요했다. 전 여사는 단지 몸이 힘들다는 이유 하나로 익숙한 오른쪽 길을 포기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인생의 낭떠러지로 발을 내딛는 것과 같다는 논리를 들먹이며 가게를 파는 문제에 대해 다시 심사숙고해보자고 했다.

 

왼쪽 길은 여전히 나에게 유혹의 손길을 내밀고 있었다. 그 손길을 덥석 붙잡고 싶었으나 전 여사의 날선 눈초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왼쪽 길을 가는 데에도 전 여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결국 조금 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몸이 힘들긴 하지만 생활비와 교육비를 보장받을 수 있는 오른쪽 길을 씩씩하게 계속 걸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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