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라 마지못해 시작한 자영업이었다. 직장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저기 문을 두드려 보았으나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곳이 없었다. 모아둔 재산이 없어 집에서 빈둥거릴 처지도 아니었거니와 한창 일할 나이에 백수 노릇을 하는 것 또한 죽기보다 싫었다.
자영업을 선택한 것은 궁여지책이었다. 다시 말해 고육지책인 동시에 호구지책이었다. 솔직히 울며 겨자 먹기 식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흥이 날 리가 없었다. 그나마 오픈 첫해에는 고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잡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매출이 하향세를 걷기 시작하더니 좀처럼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짜증이 났다. 시계불알처럼 집과 가게를 오가며 그냥 무의미하게 보내는 날들이 많아졌다. 꿈 없이 사는 삶의 피폐함을 진하게 맛보았다.
하지만 내 아픈 속을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장사는 죽어도 하기 싫다던 전 여사가 나의 무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와 같이 자영업에 발을 들여 놓고 고생하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감히 내 아픔을 봐달라고 투정할 수가 없었다.
“남에게 밥을 지어주는 사람은 자식이 잘된대요.”
민준 엄마의 한마디가 나를 각성시켰다. 계속 움츠러들던 나로 하여금 기지개를 펼 수 있게 해준 한마디였다. 내가 하는 일을 스스로 새롭게 바라볼 기회를 열어준 소중한 가르침이었다.
곤이와 이쁜공주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기 위해 시작한 자영업이었다. 곤이와 이쁜공주는 학업에 열중하며 자신들의 본분을 다하고 있었다. 곤이와 이쁜공주는 아빠를 부끄러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나만 나를 부끄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마음에 와 닿는 말이었기에 그 출처를 찾아보려고 인터넷을 싹 뒤져보았지만 아쉽게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민준 엄마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남에게 밥을 지어주는 사람은 자식이 잘된다는 말은 어디서 들은 거예요?”
“제 어머니께 들은 말이에요. 주방 일을 하게 됐다고 하니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하라면서 들려주셨어요. 꽤 괜찮은 얘기다 싶어 마음에 새겼죠. 제가 음식을 열심히 만들면 제 아이들이 잘된다는데 얼마나 좋아요.”
나는 민준 엄마를 본받기로 했다. 무엇보다 먼저,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긍지를 갖기로 했다. 음식을 만들 때 조금이라도 더 정성을 쏟기로 했다. 곤이와 이쁜공주가 잘된다는데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그리고 현재의 내 모습은 내가 만들어놓은 결과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내 모습을 그 누구의 탓으로도 돌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부터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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