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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내가읽은책

그림자 소녀

by 유일무이태인 2023.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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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뷔시 지음, 임명주 옮김의 그림자 소녀는 출판사 달콤한 책에서 2014728일 초판 발행한 장편소설이다.

 

그림자 소녀는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기는 누군인가?를 밝혀내는 매혹적인 추리소설이다. 여지껏 읽어온 책 중에서 유일하게 목차가 없는 소설이었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살아남은 아기가 누구인지 궁금해 끝까지 긴장을 누추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림자 소녀의 줄거리는 옮긴이(임명주)의 말로 대신합니다

 

 

섬세한 묘사로 리얼리티를 더한 추리소설

 

 

작가가 지리학과 교수라고 한다. 그제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형지물에 대한 사실적이고 섬세한 묘사가 번역자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었다. 어쩌면 작가가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성격일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500페이지가 넘는 짧지 않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주인공들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지하철로 파리 시내와 외곽을 누비고, 노르망디 지방의 석회암 절벽을 달리고, 쥐라산맥을 오르내린다. 비행기를 타고 터키와 캐나다로 날아가기도 한다. 책상에 가만히 앉아 번역하던 역자도 주인공들과 함께 자주 숨을 헐떡여야 했다. 어딘가에서 이 소설을 읽을 독자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주인공들의 숨 가쁜 여정만큼이나 플롯의 구성도 꽤나 복잡하게 얽히고설켰다. 18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현재와 과거가 끊임없이 교차하며 서로 연관된 듯한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터진다. 게다가 인물들은 왠지 모르게 모두가 비밀스럽다. 사건 해결이라는 목표점을 향해 달려가는 그들 앞에 수많은 복선이 지뢰처럼 깔려있다. 또한 등장인물과 독자를 모두 놀라게 할 마지막 반전의 충격도 각오해야 한다. 이로써 모든 비밀이 한방에 정리되기까지 등장인물도 독자도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벌어진다. 하지만 수고스럽지 않을 것이다. 뻔한 표현이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진정으로 손에서 책을 내려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역동성과 긴장이 지칠 틈을 주지 않고 우리를 계속 책 속으로 끌어들인다.

 

프랑스에서 2012년 출간된 <그림자 소녀>의 원제는 <그녀 없는 비행기>로 미셸 뷔시의 여섯 번째 소설이다. 심리묘사가 탁월한 추리소설이라는 평단의 뜨거운 호평과 함께 많은 상을 수상한 이 작품으로 미셸 뷔시는 2013년 프랑스 베스트셀러 작가 8위를 차지했다.

프랑스 대중에게 추리소설가로서 미셸 뷔시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소설은 <그림자 소녀>의 전작 <검은 수련>(2011)이다. 모네의 정원으로 유명한 지베르니 마을과 도난당한 그림 <검은 수련>이야기가 펼쳐지며, 이를 둘러싼 살인 사건과 세 여인의 열정, 그리고 비밀이 긴장감 있게 그려져 있다고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곧 번역,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그 책에서는 작가가 어떻게 우리의 호흡을 가쁘게 할지 기대된다.

 

살인, 비극, 운명, 광기를 소재로 하는 <그림자 소녀>는 프랑스 여행 가이드북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작가는 소설에 등장하는 도시, 마을을 실제 지명 그대로 사용했다. 거의 지도 수준의 정확성과 생동감으로 묘사된 이들 지형지물은 단순한 지리적 배경이 아니라 사건의 비밀을 알려주고 인물의 심리를 설명해주는 제3의 등장인물에 버금간다. 마르크, 에밀리, 그랑둑의 자취를 쫒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 정도로 독자를 매혹하는 힘이 있다.

예술과 젊음이 넘치는 몽마르트 언덕을 어슬렁거리고, 석회암 절벽 꼭대기에 있는 자그마한 예배당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기도하고, 쥐라산맥의 어느 산속 마을에서 지방의 명물 치즈를 안주 삼아 뱅존 와인을 기울여보고 싶다. 또 누가 알겠는가? 쥐라산맥 몽테리블 산을 트레킹하다가 등산로에서 떨어진 외진 숲에서 십자가와 노란 영춘화로 장식된 자그마한 돌무더기를 발견하게 될지…….

 

2014년 여름

임명주

 

 

 

 

이스탄불 파리행 에어버스 5403편이 고도를 이탈했다. 비행기는 십여 초 동안 1천 미터 정도 수직 강하하더니 다시 고도를 회복했다. 자고 있던 승객들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끔찍한 느낌에 일제히 눈을 떴다.(p6)

 

모든 일은 19801223일 발생한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시작되었다. 사고가 나기 전 몽테리블 산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도 들어보지 못했다. 몽테리블 산은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에 절반씩 걸쳐진 쥐라산맥의 작은 봉우리 중 하나다. 봉우리 둘레를 두 개의 협곡이 감싸고 있는 이 지역에는 예부터 목축이 성했다. 산과 가까운 마을로는 프랑스 쪽에 몽벨리아르, 스위스 쪽에 포렝트루가 있다. 정확히 해발 804미터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접근은 만만치 않다. 특히 겨울에 눈이 오면 산을 오르기란 거의 불가능해진다.(p40)

 

레옹스는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고 믿었다. 사법부가 르드리앙 판사의 동의를 얻어 아기가 6개월이 되기 전에 판결을 내리라고 권고했지만 재판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레옹스에게는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다. 변호사들은 시간이 해결해줄 테니 무작정 기다리라고 했다. 의혹이 많을수록 카르빌 쪽에 유리하고, 연줄을 잘 활용하면 언론이나 경찰, 바틀리에 서장까지 모두 같은 편이 될 거라 안심시켰다.(p96)

 

마르크는 두려운 마음을 가라앉히며 곁눈질로 시체를 살폈다. 잘은 몰라도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였다. 경직 상태나 냄새의 강도를 봤을 때 부패는 불과 몇 시간 전에 시작됐다. 마르크는 일기에 적힌 그랑둑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예고된 자살과 이 범죄에 무슨 관련이 있나? 대체 왜 살해당한 거지?(p167)

 

카르빌 저택이 쿠브레에 있다는 건 다 알려진 사실이었다. 쿠브레는 발디롭 옆에 있는 풍광이 좋은 동네다. 지극히 프랑스적인 마을인데 이제는 미국식 기획 도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전통과 현대의 완벽한 조화라고 할까……. 덕분에 부동산 가격만 치솟았다.(p214)

 

여긴 사랑스러운 여자아이의 방이다. 없는 것이 없다. 핑크빛 아기 침대에는 인형이 가득하고 창문에는 천장에서 바닥까지 기린이 인쇄된 커튼이 달려있다. 참나무 기저귀 대에는 분홍색 수건이 가지런히 정리돼있고 옆에는 파스텔색 꽃이 그려진 옷장이 있다. 장식장에는 뮤직박스, 작은 젖ㄴ등, 파란 코끼리, 호랑이, 회색 토끼, 흰색 토끼 인형들이 진열돼있다. 바닥에 깔린 큼지막한 아기 매트에도 딸랑이, 코끼리 인형, 광대 인형 같은 장난감들이 놓여있다.(p258)

 

오두막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땀이 났다. 날씨가 작년과는 사뭇 달랐다. 따사로운 겨울 햇빛이 정상까지 가득 비추고 전나무 꼭대기를 금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여름이 다시 찾아온 것 같았다. 앵초, 수선화, 용담꽃이 금방 꽃이라고 피울 태세였다.(p297)

 

니콜은 해변 산책로 쪽으로 걸어갔다. 날씨가 습하지 않고 바람도 심하지 않아 걷기에 좋았다. 잔디밭에는 작고 하얀 천막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만국기도 휘날렸다. 2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디에프 국제 연날리기 축제가 시작되었다. 열흘 동안 축제는 계속 된다. 하늘에는 이미 방패연, 가오리연, 둥근 연 등 많은 연이 떠 있다. 더 높은 곳에는 중국의 용과 잉카제국의 마스크, 거대한 파란 고양이가 날아다녔다. 가운데가 뻥 뚫린 둥근 연은 풍향계처럼 마구 돌았다. 뛰어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각양각색의 연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하늘을 알록달록 수놓았다.(p341)

 

여전히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소년과 좌석 밑에 아예 신발을 벗어놓고 누워 자는 남자를 조용히 지나 마르크는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기차는 롱그빌쉬르센을 지나고 있었다. 사과나무는 완전히 사라졌고, 옥수수와 유채의 노란색 물결이 이어졌다. 15분 후면 디에프에 도착한다.(p394)

 

말비나는 한참 테이프를 살피더니 마르크가 안 보는 사이에 테이프 하나를 오디오에 집어넣었다. 경찰 사이렌 소리에 뒤섞인 거친 기타 사운드가 트럭 안에 울려 퍼졌다. 고독한 남자의 한밤 산책을 노래하는 <세르주 K의 발라드>였다. 마르크는 첫 음만 듣고도 <포엠 록> 앨범임을 금방 알아챘다.(p436)

 

마르크와 말비나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예상대로라면 정상까지는 두 시간 정도 걸린다. 마르크는 빠르게 걸었다. 말비나도 힘든 기색없이 잘 따라갔다. 등산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해발 5백 미터까지의 울퉁불퉁하고 좁은 오솔길이었지만 방향 표시가 잘 돼 있었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두 강, 스위스, 생투르 산의 성채 마을 등 장관이 펼쳐졌다.(p471)

 

인간은 목숨에 연연하지. 그게 문제야. 모든 문제가 그런 집착에 있는 거라고. 아무런 희망이 없는데도 살겠다고 아등바등하지. 모든 싸움이 그렇더군. 카르빌과 비트랄의 싸움도 헛된 거였어. 순전히 오해 때문에 싸운 거야. 이제 진실을 알았겠지? 그날 밤 에밀리와 리즈로즈는 둘 다 죽었어. 둘 다 비행기 사고로 죽은 거라고. 믿기 싫겠지만 그게 사실이야. 미안하구나. 마르크”(p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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