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의 『센트럴 파크』는 출판사 밝은세상에서 2014년 12월 5일 초판 인쇄한 장편소설이다.
『센트럴 파크』는 알츠하이머병 환자인 파리 경찰청 팀장 알리스와 신경정신과 의사 가브리엘 케인이 수수께끼 같은 동행 이야기가 4부로 나누어져 서스펜스하게 진행되는 장편소설이다.
제1부 묶인 사람들/7
제2부 고통의 기억/96
제3부 피와 분노/189
제4부 봉합이 풀어진 여자/260
『센트럴 파크』의 줄거리는 옮긴이(양영란)의 말로 대신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크고 작은 상처들을 떠안고 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저러쿵 쉽게 말해선 안된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상대의 아물지 않은, 아니 아물었다고 믿고 있던 상처마저도 덧나게 할 수 있으니까.
기욤 뮈소의 신작소설 <센트럴파크>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예외는 아니다. 실연이나 이혼, 자식을 보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아픔 등, 저마다 인생이라는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맞닥뜨려야 했던 상처와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그 중에서도 여주인공 알리스는 가장 비극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부모는 이혼했고, 가치관 또는 인생관이 다른 엄마와 현제들로부터 늘 왕따를 당한다. 그녀를 유난히 예뻐해 주던 아버지는 비리 경찰로 전락해 철장신세를 지고 있는데, 설상가상 강력계 형사 업무의 일환으로 연쇄살인마 검거에 나섰다가 사랑하는 남편과 뱃속에 든 아기까지 잃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비극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운명은 그녀에게 불치병이라는 극한의 시련까지 안겨준다.
자, 여주인공 알리스가 그처럼 비극적인 인물로 그려졌으니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상적인 신파를 연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가 예상하는 길을 따라간다면 기욤 뮈소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꾼 기욤 뮈소가 들려주는 ‘알리스의 생’은 우리가 예상한 행로와 아주 많이 다르게 전개된다.
오로지 일에서만 위안을 찾는 다혈질 형사 알리스는 대학 동창 친구들과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난 다음날, 낯선 곳에서 잠을 깬다. 손에 수갑이 채워져 있고, 수갑의 다른 한쪽은 처음 보는 낯선 남자의 손목에 채워져 있다. 과도한 알코올 섭취로 ‘필름이 끊어졌다’고 생각한 그녀는 형사답게 의문을 풀기 위한 수사를 시작한다. 이상한 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셔츠에 묻은 핏자국, 분명 자신의 것이 아닌 총, 그 총에 장착된 총알 가운데 한 개가 비는 점 등도 등줄기가 오싹해지게 만드는 수수께끼들이다.
영문을 모르는 채 잠에서 깨어난 건 자신을 미국 출신 재즈피아니스트라고 소개한 남자 가브리엘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전날 더블린의 한 클럽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고 우기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두 사람 모두에게 낯선 그곳이 뉴욕의 센트럴 파크 한가운데라는 게 밝혀지지만 의문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전작 <내일>을 통해 스릴러 작가로서의 재능을 증명해보인 기욤 뮈소는 신작 <센트럴 파크>에서는 아예 혼자 사는 여성들만을 표적으로 삼아 공격하며 이전 희생자의 스타킹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마를 상대로 사투를 벌이는 여자 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본격적인 수사물에 도전하고 있다.
연쇄살인마를 추적해가는 표면적인 얼개 이면에 감춰진 또 하나의 맥락, 곧 살인을 자행하면서까지 딸을 보호하려는 절절한 부성애나 위기에 처한 동료 형사를 위해서라면 거짓말이나 연기도 마다하지 않는 끈적끈적한 동료애, 환자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건 도박을 마다하지 않는 의사의 투철한 인류애 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이 만들어가는 감동의 순간들과 함께 할 때마다 우리는 아랫배 언저리로부터 무언가 뜨거운 느낌이 치밀어 올라오며 울컥해진다.
일반적으로 스릴러 애호가들은 범인과 형사 또는 사립탐정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밀한 두뇌 개임, 혹은 치열한 추격전을 통해 짜릿한 지적 쾌감을 맛보고자 한다. 스릴러 소설이 본래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냉정하고 차가운 이성의 영역인지는 모르겠으나 기욤 뮈소가 그려 보이는 <센트럴 파크>에서 우리는 냉정과 열정 사이를 넘나드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기욤 뮈소가 여전히 가족, 직장 동료, 이웃 간의 따뜻한 온기를 믿는, 조금은 구시대적이고 아날로그적인 작가라 마음을 놓는 독자들도 많지 않을까?
깊어가는 가을날, 한적한 고궁의 찻집에라도 앉아 이따금 고개를 들어 한가로이 은행잎 떨어지는 모습에 눈길을 주어가며 뉴욕 센트럴 파크를 수놓고 있을 강렬한 색채의 단풍과 낙엽 밟는 소리, 차이나타운, 리틀 아테나의 정취 등을 상상하며 이 책을 읽는다면 아마도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다.
양영란
알리스 쉐페르는 가까스로 눈을 떴다. 막 떠오른 새벽햇살에 눈이 부셨고, 아침이슬을 맞은 옷은 축축했다. 오소소한 소름이 돋을 만큼 추운 날이었고, 이마에는 축축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목구멍이 바짝 타들어갈 만큼 갈증이 났고, 입안에서는 타다 남은 재 맛이 느껴졌다. 관절마디가 안 아픈 곳 없이 쑤셔댔고, 사지는 뻣뻣하게 마비되었고, 머릿속은 몽롱했다.(p8)
알리스는 남자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검정색 진 바지에 캔버스 운동화, 엉망으로 구겨진 파란색 셔츠와 몸에 딱 맞게 재단한 재킷 차림의 남자는 선량해 보이는 눈매 아래로 다크 서클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p14)
남자가 호기심어린 눈으로 알리스를 쳐다보았다. 날씬한 몸매에 뒤로 틀어 올린 금발, 대체로 굳은 표정이지만 오목조목하게 예쁜 얼굴, 알맞게 솟은 광대뼈, 오똑한 콧날, 속이 들여다보일 듯 투명한 피부, 단풍든 나뭇잎들이 반사하는 빛을 받아 강렬하게 빛나는 눈, 찰싹 달라붙는 진 바지 위에 걸쳐 입은 가죽점퍼, 그 안에 받쳐 입은 셔츠에 묻은 혈흔 따위를 차례로 쳐다보던 남자의 눈에 의혹이 깃들었다.(p15)
느닷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콤팩트에서 눈을 떼고 살며시 고개를 든다. 눈앞에 담당의사 대신 피부가 거무스레하고 눈에 뿔테안경을 낀 금발의 곱슬머리 의사가 웃음을 가득 머금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언뜻 보기에도 꽤나 잘 생긴 남자다.(p67)
폴 말로리는 어제 본 산부인과의사가 틀림없었지만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행색이 말이 아니다. 트레이닝복 바지에 헐렁한 셔츠를 걸친 폴 말로리 박사는 제멋대로 헝클어진 금발의 곱슬머리를 손으로 쓸어 올리며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얼굴에 피곤한 기색과 함께 놀라움이 역력하게 묻어나 있다.(p75)
우리의 생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때에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는 순간이 있다. 당신이 지닌 모순, 두려움, 회한, 분노, 머릿속에 들어있는 복잡한 생각을 그대로 인정하고 품어 안아주는 당신의 반쪽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 당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등을 토닥여주고, 거울에 비친 당신의 얼굴을 볼 때마다 더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켜주는 사람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p87)
아이들 한가운데 자리한 클라라는 가식 없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짧게 자른 금발, 우아한 바지 정장 위에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있고, 버버리스카프를 두른 차림이다. 클라라가 무척이나 좋아한 옷차림인 듯 똑같은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 여러 장 더 있다. 2010년 5월 부르타뉴에서 거행된 친구 결혼식, 같은 해 8월의 런던여행, 살해당하기 몇시간 전 프장드리 가의 CCTV에 찍힌 캡처사진에도 클라라는 바로 그 옷차림을 하고 있다.(p116)
들쭉날쭉 자란 콧수염, 처진 볼 살, 원색 플라스틱 재질의 작고 동그란 안경테를 착용한 스테판 달마소의 말투에서는 마르세유 억양이 강하게 느껴진다.(p121)
가브리엘은 샛노란 형광색 스판 목폴라와 소매 없는 보라색 오리털 조끼 차림에 컴퓨터 천재 같은 느낌을 풍기는 대학생과 마주앉아 장기를 두는 중이었다.(p160)
키는 작지만 다부진 몸집에 백발이 된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여자였다. 엘리안은 얼굴에 사각안경을 쓰고 있었고, 검은 튜닉 위에 흰 가운을 걸친 차림새였다. 동그스름하고 온화해 보이는 얼굴이 마치 러시아 인형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p173)
검은 머리에 흰머리가 적당히 섞인 머리카락, 사흘쯤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이 까칠까칠하게 자란 아버지는 여전히 형사의 위엄을 갖추고 있다. 모피로 안감을 댄 7부 가죽 코트 속에 목까지 올라오는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밑단이 너덜너덜해진 진 바지에 앞코가 각진 앵클부츠를 신은 알랭 쉐페르 형사는 언제나처럼 손목에 롤렉스 데이토나를 차고 있다. 내가 태어나기 일 년 전, 엄마가 아버지에게 선물한 시계다.(p182)
가운에 올리버 미첼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의사는 반쯤 벗겨진 머리, 유난희 짙은 눈썹, 상대를 압도하는 체구, 털복숭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이제 막 의대를 졸업한 학생처럼 눈빛이 순수해보였다.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미소, 진 바지에 낡은 농구화, 흰 가운 밖으로 빠져나온 티셔츠 자락만 봐도 대체로 소탈한 성격일 거라는 느낌이 들게 했다.(p215)
클루조 교수는 진료실 탁자 앞에 앉아 노트북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겉모습만 보자면 그는 저명한 의사의 행색이 아니다. 늘 까치집을 짓고 있는 머리, 창백한 안색, 초췌한 얼굴, 제대로 면도를 하지 않아 덥수룩하게 자란 턱수염이 그의 외모를 결정짓는 특징이다. 그는 의사라기보다는 싱글 몰트 위스키를 연거푸 마셔대며 밤새도록 포커게임을 하다가 온 사람 같다. 단추를 채우다가 만 가운 안쪽으로 꼬질꼬질한 체크무늬 셔츠와 실밥이 군데군데 터진 스웨터가 빠져나와 있다.(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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