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의 『천사의 부름』은 출판사 밝은세상에서 2011년 12월 9일 초판 인쇄한 장편소설이다.
『천사의 부름』휴대폰이 바뀌면서 놀라운 비밀 이야기가 시작되는 소설로서 5부로 나누어져 있다.
프롤로그/9
1부 고양이와 쥐/14
2부 앨리스 딕슨 사건/146
3부 하나가 된 두 사람/299
에필로그/460
『천사의 부름』의 줄거리는 옮긴이(전미연)의 말로 대신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에서 기대하는 것은 두 가지 일 것 같다. 익숙함과 새로움. 우리는 이 작가를 좋아하게 된 이유, 즉 그만의 독특한 글쓰기 문법과 스타일을 다시 보길 기대한다. 기욤 뮈소 소설의 경우 감성적인 소재, 사랑 이야기, 영화를 연상시키는 시각적인 글쓰기, 젊고 감각적인 문체, 트레디한 대중문화 코드 등이 바로 익숙함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신작에서 기대하는 것은 익숙함이 전부가 아니다. 익숙한 코드와 더불어 조금은 낯설지만 새로운 시도의 흔적, 작가가 부단히 노력하고 변화한다는 증거를 보고 싶어 한다. 독자들이 그의 차기작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욤 뮈소의 신작 <천사의 부름>은 독자들의 이런 이중 기대에 정확히 부응하는 책이다. 작년에 작가는 40년대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인 ‘스크루볼’적 색채가 짙은 <종이 여자>로 성공적인 변신을 시도한 바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 톰과 종이 여자 빌리의 말랑말랑 달콤한 러브스토리는 뮈소 팬들에게 친숙하면서도 낯선 새로운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기욤 뮈소가 올해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천사의 부름>은 로맨틱 스릴러이다. 러브스토리가 바탕이라는 점은 전작들과 유사하지만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판타지적 요소가 사라지고 작품 초반 이후부터 로맨틱 코미디가 빠르게 스릴러로 전환한다는 점은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는 전작들에서도 반전과 서스펜스 같은 스릴러적 장치들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작품의 긴박감과 재미를 높였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지금껏 시도한 적이 없는 고강도 스릴러를 선보이며 다시 한 번 큰 변화를 꾀했다.
잿빛 하늘의 맨처스터, 로어 맨해튼, 브루클린, 눈 덮힌 코니아일랜드, 인적 끊긴 한밤중 첼시의 하이라인파크……. 스릴러 무대로서는 이상적일 것 같은 장소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느와르적 감성의 아슬아슬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할리우드 스릴러 영화를 한 편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당연히, 에필로그는 뮈소 특유의 핑크빛 멜로이지만…….
<천사의 부름.은 뉴욕 케네디공항에서 플로리스트인 매들린과 셰프인 조나단의 휴대폰이 뒤바뀌는 것으로 시작된다. 각자 파리와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고 나서야 휴대폰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두 사람은 호기심에 이끌려 상대방의 휴대폰을 뒤지기 시작한다. 서로의 삶을 엿보게 된 그들은 곧 자신들의 과거로 치부하고 가슴속에 묻었던 비밀이 사실은 과거가 아닌 현재이며, 자신들의 인생이 그것에 의해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들의 휴대폰에, 그들의 인생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4년 전 책 홍보차 캐나다에 갔다. 몬트리올공항에서 직접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밝혔다. 두 주인공의 휴대폰이 바뀐다는 평범한 에피소드에서 4백 페이지에 이르는 장편 스릴러가 나온 것은 세상의 변화를 재빠르게 포착하는 그의 소설가적 감각,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과 상상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로맨틱 스릴러인 <천사의 부름>에 새로운 요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독자들이 열광하는 익숙한 뮈소식 소설 코드 역시 곳곳에서 발견된다. 친근감 넘치는 두 주인공 매들린과 조나단이 주고받는 톡톡 튀는 감각적인 대화와 문자 메시지들에서는 독자와의 교감을 중시하는 젊은 작가의 감수성이 느껴진다. 화려한 조나단의 요리들, 생동감 넘치는 파리의 랭지스 시장, 로어맨해튼, 브루클린, 코니아일랜드는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뿐만 아니라 ‘보는’재미 역시 선사한다. 소소한 대중문화 디테일들 역시 기욤 뮈소 소설만의 매력이다.
번역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프롤로그 부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지나치게 무겁지도 진지하지도 않되 주변세계를 향해 한결 예리하고 깊어진 관찰자 뮈소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아, 또 기대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천사의 부름> 속편을 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쳤다. 내년 크리스마스, 독자들이 기욤 뮈소의 신작에서 또 다시 매들린과 조나단 커플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전 미 연
조나단이 휴대폰을 귀에 대고 미간을 찌푸리며 에스컬레이터 옆 난간으로 다가갔다. 체구에 걸맞지 않게 커다란 파카를 입고 뒤뚱거리며 서 있는 꼬마의 손을 잡고 통화에 열중하고 있는 갈색머리 미녀가 보였다.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그녀는 로라이즈 진과 몸에 꼭 끼는 오리털패딩점퍼 차림에 브랜드 로고가 선명한 명품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큰 선글라스가 마치 가면처럼 그녀의 얼굴 대부분을 덮고 있었다.(p19)
떡진 머리, 북슬북슬한 눈썹, 잡초처럼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 드루피마냥 축 처진 눈꺼풀. 마르쿠스는 마치 선사시대에서, 아니면 다른 별에서 방금 시공간 이동을 한 사람 같았다. 헐렁한 배기팬츠 위에 배꼽까지 단추를 풀고 하와이언 티셔츠를 입은 그의 파리하게 야윈 몸은 마치 좁은 차체에 맞추기 위해 일부러 비틀고 해체해놓은 것 같았다.(p32)
욕실로 들어간 매들린은 짧게 샤워를 마치고 몸을 부르르 떨며 밖으로 나와 옷장에서 방한용 티셔츠와 청바지, 두툼한 셰틀랜드 양모 스웨터를 꺼내 입었다. 그 위에 가죽점퍼를 걸치고 문 앞에 선 그녀는 킨더 부에노 초콜릿바를 와작와작 씹어 먹고는 목도리를 두르고 집을 나섰다.(P43)
“굳이 분류하자면 바이올렛은 겸손과 수줍음을 뜻해. 비밀스러운 사랑을 상징하기도 하지. 꽃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가 장미꽃다발을 만들어줄 수도 있어”(p77)
조나단은 겉보기와는 달리 여리고 예민한 사람이었다. 상처를 모두 ‘회복’한 것처럼 보여도 그가 아직 불안한 심리상태에 놓여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사람이라면 공허와 상처, 버림받은 느낌, 외로움을 가슴에 묻고 산다.(p85)
덥수룩한 수염, 눈 아래 드리워진 다크 서클, 초췌한 얼굴, 펑퍼짐한 몸매, 뉴욕 미식계의 황제로 군림해 온 프랑스 출신 셰프 조나단 랑프뢰르는 초라한 모습으로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그는 미슐랭가이드 쓰리 스타급인 자신의 레스토랑 <림퍼레이터 레스토랑>를 즉시 폐업하고, 아내 프란체스카 데릴로와 함께 설립한 <림퍼레이터 그룹>의 모든 사업권을 즉시 매각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림퍼레이터 그룹> 임직원 2천 명의 앞날이 불투명해지는 순간이었다.(p103)
“사장님은 강하면서도 마음이 여린 분이시죠. 개성이 지나치게 강하세요. 미디어와 대중적인 인기를 혐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동경하는 양면성을 가지고 계시죠. 최근에는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지내셨어요. 그동안 끊임없는 긴장감 속에서 바쁘게 지내셨죠. 완벽주의의 노예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일하다 보니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치셨어요…”(p107)
매들린은 담배 한 개비를 다시 피워 물었다. 앨리스의 방을 둘러보는 동안 지난날의 기억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녀 또한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와 허구한 날 술병을 끼고 사는 아버지 밑에서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 청소년이 되면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겠다고, 다른 곳으로 떠나 새 삶을 살 거라 다짐했다. 언제가는 파리에 정착해 살고 싶다는 게 그녀의 오랜 꿈이었다.(p154)
메들린은 아버지로부터 플로리스트로서의 재능과 열정을 물려받았다. 처음에 그녀는 혼자서 화훼장식을 익혔다. 그러다가 앙제에 있는 유명화훼학교인 <피베르디에르>에 들어가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고 나서 전문 플로리스트가 되었다.(p61)
중간키에 갈색머리, 매끈하고 각진 얼굴의 대니 도일은 나름 옆집 아저씨 같은 평범한 인상을 풍기려고 애를 썼다. 매들린은 그가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케빈 스페이시가 연기한 카멜레온 같은 캐릭터를 흠모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p172)
머리카락이 새까맣고 피부가 까무잡잡한 미녀가 조나단 앞에 와서 섰다. 아담한 키의 모랄레스 박사는 수수하면서도 우아한 자태를 지닌 여자였다. 그녀는 몸매를 은근히 과시하듯 흰 가운을 타이트한 재킷처럼 셔츠 위에 걸치고 단추를 풀어두고 있었다.(p208)
소녀는 스키니 진에 가죽 캔버스 화를 신었고, 줄무늬 티셔츠가 살짝 보이게 입은 분홍색과 회색 혼합의 후드재킷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휘장이 붙어 있었다. 소녀의 욈ㄴ쪽 콧등에는 깨알 같은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고, 목에는 은과 석류석으로 만든 중세 스타일의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얼굴은 허옇게 파운데이션을 발라 창백한 느낌이 났고, 콜 펜슬과 아이라이너로 눈을 강조하는 화장을 했다. 얼핏 보면 시체처럼 차가운 느낌이 들었지만 나름 고심한 끝에 연출한 스타일인 듯했다. 새 신발에 브랜드 옷을 입고, 고급 액세서리까지 걸친 걸 보면 거리를 배회하는 불량청소년이 아니라 유복한 집 아이가 분명했다.(p224)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은 우리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다 ’(p247)
매들린은 집을 나서기 전 거울 앞에서 완벽하게 되었는지 꼼꼼하게 확인하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은은하면서도 시크한 화장, 날씬한 느낌을 연출하는 하이힐, 검정색 타프타 실크 원피스. 무엇보다 다리 길이가 관건이었다. 너무 길거나 짧지 않게, 무릎 바로 위에서 찰랑거리는 원피스(p251)
매들린은 유리 트랩으로 걸어 들어갔다. 낡은 청바지, 터틀넥 스웨터, 가죽점퍼를 입은 그녀의 옷차림에서 여성스러운 면모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부스스한 머리, 화장기라고는 없는 얼굴, 도무지 외모에 신경 쓴 흔적을 발견할 수 없는 그녀의 후줄근한 모습은 현재의 복잡한 심경을 대변하는 듯 했다.(p282)
조나단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그녀의 가슴속에서 뭔가 꿈틀했다.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흐르고, 갑자기 배가 딱딱하게 뭉쳤다. 심장이 요통치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뱃속이 찌릿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느낌이었다.(p312)
조나단은 프란체스카와 헤어지고 나서 단 한 번도 여자와 사랑을 나눈 적이 없었다. 그가 어설픈 손놀림으로 그녀의 재킷과 스웨터를 벗겼다. 그녀는 그의 셔츠 단추를 풀며 목덜미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는 몸을 살짝 뒤로 빼며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입술을 빨았다. 그녀에게서 감귤과 민트, 라벤더 향이 뒤섞인 상큼하고 싱그러운 냄새가 났다.(p319)
앨리스는 욕실에 남아 거울을 들여다보며 클렌징 티슈로 화장을 지웠다. 거울 속에 얼굴이 갸름한 열일곱 살짜리 금발 소녀가 서 있었다. 시원한 이마, 장난기 가득한 입술, 높이 솟은 광대뼈. 어두운 청록색 눈동자가 새하얀 피부 위에서 도르라져 보였다. 학교에서는 외모와 성 때문에 다들 그녀가 폴란드 혈통이라 생각했다. 앨리스 코왈스키. 신분증에 적힌 그녀의 이름.(p322)
줄리어음대는 예술과 문화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학생들이 모인 학교였다. 그녀의 주위에는 개방적인 사고를 지닌 관대하고 창의적인 사람들, 타인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는 사람들뿐이었다. 기숙사생활은 걱정없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었다. 필요한 경우 한밤중에도 방음설비가 잘 갖추어진 연습실에서 맘껏 바이올린을 연습할 수 있었다. 학교 내부에 여러 개의 강당과 콘서트홀, 물리치료실, 심지어 피트니스센터까지 구비돼 있었다.(p325)
룸미러를 통해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짧게 깎은 머리, 흐리멍텅한 눈동자, 홍조증 있는 듯 탄력 없이 부어오른 뺨.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도로로 나간 트럭은 브로드웨이를 달리다가 콜럼버스 애비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p328)
조나단은 미간을 모아 다시 한 번 확인했지만 틀림없었다. 가운데는 잘록하고 양쪽 끝은 봉긋 솟은 보닛, 곤충의 눈을 연상시키는 유선형 헤드라이트, 차체에 파충류 동물 같은 느낌을 주는 공격적인 그릴.
새벽에 본 바로 그 차가 분명했다. 신호등 앞에서 정차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운전자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차 앞 유라창에 햇빛이 반사되는 바람에 결국 운전자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다. 차 넘버라도 외워두고 싶었지만 놀랍게도 페라리에는 번호판이 붙어 있지 않았다.(p354)
조나단은 금발의 블라이스에게서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에서 나오는 여주인공 같은 인상을 받았다. 차갑지만 우아한 느낌의 여자. 잘록한 허리, 끈 달린 고무장화, 터틀넥스웨터 위에 걸쳐 입은 검정 가죽재킷. 뒤로 땋아 올린 머리는 작은 헤어클립을 여러 개 꽂아 단단히 고정시키고 있었다. 옆에서 보면 섬세한 얼굴선과 아이라인을 가늘게 그린 눈이 매혹적으로 보였다. 얼굴에 자리 잡은 흉터도 ‘팜므 파탈’의 매력을 더해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 잡는 매력으로 작용할 것 같았다.(p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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