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의 세계는 나와는 먼 나라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내 인생의 갈림길에 자영업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음식점 일을 하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처음 가게를 시작할 때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음식 계통에는 경험이 전무했기에 쉽게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못 하겠다며 물러서고 싶진 않았다. 이런 일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다른 출구가 보이지 않았기에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싫든 좋든 자영업 정글에 뛰어든 이상 낙오자가 되기는 싫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A4 용지에 메뉴 레시피를 인쇄하여 코팅한 후 화구 전면에 부착하는 것이었다. 40여 개나 되는 레시피를 다 외워서 음식을 만드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외워지겠지만 그때까지는 레시피를 눈앞에 두어야 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 되짚어보니 레시피를 코팅하여 조리대에 부착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레시피 덕분에 불안감을 떨쳐내고 손쉽게 조리를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레시피를 일일이 확인하느라 조리 작업에 시간이 걸렸으나,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조리 작업이 빨라졌다.
두 번째로 한 일은 프라이팬과 친해지는 것이었다. 볶음밥, 파스타, 도리아 종류의 메뉴들은 일차적으로 프라이팬을 이용하여 만든다. 프라이팬을 자유자재로 이용할 줄 알면 보다 먹음직스러운 메뉴를 보다 빠르게 만들 수 있다. 반세기를 살아오는 동안 할 줄 아는 음식이 고작 라면뿐이던 나에게 프라이팬은 매우 낯선 도구였다. 무게도 만만찮게 나가는 프라이팬은 처음에는 심통만 부렸다. 가까이 가려 하면 화부터 냈다. 그렇다고 같이 화를 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기에 참고 또 참으면서 끊임없이 구애의 손길을 뻗쳤다. 나에게 벽을 단단히 쌓고 있던 프라이팬이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을 활짝 열고 나를 반겨주었다. 나는 너무너무 좋아서 으스러지도록 껴안았다. 남들보다 꽤나 늦게 친해진 만큼 그 끈이 끊어지지 않도록 계속 노력을 기울였다.
레시피를 암기하고 프라이팬과 친해졌다면 음식 분야의 자영업 정글에 당당히 입문했다고 선언해도 좋다. 이 외에도 이 정글에 입문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수히 많지만, 그중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니라 무료한 나날을 견뎌낼 힘을 비축하는 것이다.
모든 자영업이 비슷하겠지만, 특히나 음식 분야 자영업에 종사하노라면 하루하루가 무료한 나날의 연속이다. 단순하고 똑같은 일이 일 년 열두 달 365일 반복된다. 일주일에 하루쯤 휴일을 가질 수 있다면 그날만큼은 무료함을 벗어난 생활을 할 수 있겠지만, 휴일도 사치라고 여겨 하루도 쉬지 않고 달리는 이에게는 이마저 남의 이야기다.
무료한 나날을 견뎌낼 힘을 비축하는 방법은 본인만이 안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가르친다고 해서 알아지는 게 아니다. 가게를 1~2년 정도만 하고 그만둘 사람이라면 무료한 나날을 견뎌낼 힘을 비축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 5년 이상 생업으로 자영업을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행히 스마트폰 시대에 접어들면서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 여행이 가능해져 무료하게 흘려보내는 시간을 다소 줄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인터넷 여행만으로 무료한 나날을 이겨내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될 만한 생산적인 방법을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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