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 터벅터벅 걷는 발걸음이 무겁다. 모든 것이 낯설고,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진 듯하다. 향후 전개될 길이 탄탄대로일지 가시밭길일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그러나 두렵다고 멈출 수 있는 길이 아니기에 두 눈 질끈 감고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뎌본다.
솔직히 이전에 걷던 길을 계속 가고 싶었다. 그 길이 익숙했기에 다른 길로 발을 들여놓기가 싫었다. 그 익숙한 길에서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울타리가 나타나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됐다. 믿어지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울타리 주변을 서성거려 보았지만 조그마한 틈조차 찾을 수 없었다.
무능한 남편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이 싫었고, 부끄러운 아빠가 되는 것이 두려웠다. 별로 친하지 않던 소주잔을 만지작거리는 시간이 늘어났다. 누군가와 함께 마시는 소주 한잔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혼자 마시는 소주 한잔은 오히려 스트레스의 주범이 될 수 있다. 몸에 유익하지 않은 소주와 멀어지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처음 걸어보는 길은 낯섦 그 자체였다. 초보운전자처럼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하루하루 초조해 하는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등을 다독여주는 이들이 있었다. 삶이 힘들다 해도 실망하지 말고 힘을 내라고 손을 내밀어주는 이들이 있었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자영업 정글에서 패자가 되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들은 나의 고객들이다.
그들은 자영업 정글에서 내가 꾸려가는 삶을 지탱해주는 거대한 버팀목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사방팔방으로 음식점들이 널려있다. 그들은 그 많은 음식점 중에서 굳이 내 가게를 찾아주는 이들이다. 어찌 고맙지 아니하며, 반갑지 아니할까. 열 번 백 번 큰절을 올려도 부족할 것이다. 그들은 나에게 왕이며 여왕이다. 그들은 나에게 왕자이며 공주다.
가게를 찾아주는 모든 고객에게 신하 된 도리를 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역할을 제대로 다하지 못하고 있다. 가게가 셀프서비스로 운영되고 있는 구조적 모순 때문이다. 어느 왕이 카운터까지 직접 가서 음식을 주문하고 싶겠는가? 어느 여왕이 식기와 밑반찬을 직접 가져와서 차리고 싶겠는가? 어느 왕자가 카운터까지 와서 식판을 들고 가고 싶겠는가? 어느 공주가 식사 후 식기를 직접 반납하고 싶겠는가?
해답은 간단하다. 고객이 대접받고 있다고 느끼게끔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면 된다. 하지만 그러려면 홀 서빙 인원을 늘려야 하는데, 이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고객을 왕처럼 모셔야 한다는 생각과 그러지 못하는 현실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졌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발상을 전환하기로 했다. 고객을 왕으로, 여왕으로, 왕자로, 공주로 어렵게 여기기보다 가족이나 지인으로 여기고 친근하게 접근하기로 했다. 우리 가게를 방문하는 고객 중 약 80%는 곤이와 이쁜공주 또래다. 곤이와 이쁜공주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준다는 생각으로 서비스하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도 극히 일부 고객을 제외하고는 가게가 셀프서비스로 운영되는 것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잘 먹었습니다” 또는 “맛있어서 또 왔습니다”라고 인사해주는 고객들도 있었다. ‘고객은 가족이다’, ‘고객은 지인이다’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나서야 비로소 고객을 왕으로 섬겨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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