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어둠이 날 감쌌소. 나 그대 창가에 가 사랑을 고백하리라. 나의 사랑 줄리엣 내 이름은 로미오라오. 사랑의 눈을 뜨고 어둠을 응시해 봐요. 그리고 속삭여줘요. 로미오 그댈 사랑해. 음, 어여쁜 미소를 띠고 나에게 속삭여요. 달콤한 목소리로. 나의 사랑 로미오 내 이름은 줄리엣이라오.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하며 살겠어요. 서로가 맹세를 해요. 우리 사랑 영원하다고 우리 사랑 변함없다고”
자작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연가’를 부를 때마다 반응이 뜨거웠다. 음악성은 높지 않지만 쉬운 가사와 친근한 멜로디로 누구나가 좋아했다. 우연찮게 기타와 친해졌으며, 틈틈이 긁적이며 쓴 노랫말에 곡을 붙이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음악을 접했던 것이 아니기에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으나 일부 노래는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마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치고, 선율법과 화성법 등을 배웠다면 한 차원 높은 곳을 만들었을 것이다. 화성법에 대한 기초지식이 하나도 없이 기타 하나만으로 곡을 만드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작곡가의 길을 걸어볼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기도 하였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능력의 한계를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취미 생활로 곡을 만드는 작업은 대학 졸업 때까지 계속했다.
개그보다는 노래를 해보라는 심사평(?)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가수의 소양을 지니고 있었다. 두 이름을 지녔던 첫사랑 그니와 헤어지고 아픔을 잊기 위해 가까이 한 친구가 기타였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가외로 시간이 넘쳤는데 그 시간에 공부보다는 기타를 치면서 음악에 빠져 있었던 적이 많았다. 프로의 수준에는 미달이었지만 아마추어 수준으로는 그럭저럭 인정을 받고 있었다.
당시에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는 대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특히 가수의 길을 걷고자 하는 학생에게는 등용문이라 할 수 있었다. 사회적인 분위기 탓인지 그룹 활동이 활발한 시절이었다. 밤무대에서 드럼을 쳐본 경험이 있는 고교 동창과 그룹 결성을 시도한 바 있으나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군 제대 후 복학하기 전에 음악학원에 등록하여 발성법 등을 배우기도 했다. 가수에 대한 꿈이 애초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불러주세요. 당신의 손길 기다리는 이름 없는 한 송이 꽃. 처음 필 때부터 당신의 꽃이에요.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매서운 눈보라 몰아쳐도 당신을 기다리는 이름 없는 꽃. 누구도 내 향길 맡을 수 없어. 나는 나는 당신의 꽃. 가을이 가기 전에 안아주세요. 당신의 사랑 먹고사는 이름 없는 한 송이 꽃. 한 잎 질 때까지 당신의 꽃이에요. 포근하게 안아주세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고 당신만 사랑하는 이름 없는 꽃. 누구도 내 모습 볼 수가 없어. 나는 나는 당신의 꽃”
‘당신의 꽃’이라는 자작곡을 가지고 강변가요제에 참가했다. 결과는 예선 탈락이었다. 스튜디오만 구경하고 강변은 가보지도 못했다. 프로 정신이 결여되어 있었다. 대학생활에 대한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 보자는 심정으로 참가하였던 것 같다. 죽기 살기로 덤벼들어도 될까 말까 한데 추억꺼리로 생각하였으니 좋은 결과가 나올 리가 없었다. 그 당시에 좀 더 세상을 치열하게 살았으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개그맨이나 가수에 대한 미련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마 그 방면으로는 자신의 능력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체득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노랫말과 작곡에 대한 애착은 꽤 오래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노랫말의 경우 무명 작곡가와 연결되어 발표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2% 부족으로 인해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작곡에 대한 미련을 아이들에게 표출했다. 어린 시절에 피아노를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무조건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하지만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지 못한 아들은 피아노 배우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6개월 정도를 다닌 후 아들은 피아노를 배우기 싫다고 고집을 부렸다. 괘씸했지만 방도가 없었다.
아들에게 실망을 하였지만 완전히 꿈을 접은 것은 아니었다. 둘째인 이쁜공주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쁜공주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이쁜공주에게는 피아노 학원을 다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아빠가 못 이룬 꿈을 대신 이루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솔직히 이야기했다. 이쁜공주는 아들처럼 6개월 만에 손을 들지는 않아 다행스럽게 생각하지만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는지는 솔직히 미지수이다.
아무튼 작은 희망을 가지고 틈만 나면 이쁜공주에게 자작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연가’를 들려주고 있다. 아울러 노랫말을 쓰고 곡을 만들어 발표하면 저작권을 보호받고,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면 봉급생활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세뇌교육을 하고 있다. 자녀들의 능력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못 이룬 꿈을 강요하는 것이 부모들의 어리석은 행동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함에도 이쁜공주가 노랫말과 친해지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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