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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만만세/사오정의 인생 도전기

독일병정을 꿈꾸다

by 유일무이태인 2023.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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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의 링에서 오직 전진하는 독일병정이 되고 싶었다. 어떠한 고통이 다가선다 해도 절대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투쟁하여 승리하는 전사이고 싶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로 세운 꿈은 복서였다.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면서 맨주먹으로 승부하는 남성적인 스포츠의 매력에 푹 빠졌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인간이 합법적으로 거금을 만질 수 있는 디딤돌이라고 판단했다.

 

어린 시절에 어른들이 장래 꿈이 무어냐고 물어보면 판에 박은 듯이 판사, 의사, 선생, 장군, 대통령이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이러한 답변을 흐믓해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아이큐의 한계를 알기 시작하면서부터 판사, 의사 등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장래에 어떤 인물이 될까 고심을 많이 했다.

 

지금은 대중들의 관심에서 많이 벗어나 있지만 당시에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운동이다. 독일병정이라는 닉네임으로 사각의 링을 뜨겁게 달구었던 선수가 있었다. 가장 가벼운 체급이었지만펀치력과 파이터적인 면에서 최상급이었다. 그의 경기에서는 헝그리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힘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를 닮고 싶었다.

 

챔프만 되면 돈방석에 앉을 수 있었다. 피가 튀는 치열한 스포츠인 만큼 챔프에게 명예와 부를 함께 주었다. 지금은 로또가 인생역전의 대명사지만 당시에는 스포츠였으며 그 중에서도 복싱이 가장 각광을 받았다. 가진 것이 없는 젊은이들은 맨몸으로 시작할 수 있는 복싱에 매료됐다. 어린 마음에 도전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매일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행상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다.

 

링 위에서 치열한 난타전을 벌이면서 상대편을 발아래에 굴복시키는 주인공이 되는 꿈을 꾸었다. 복싱만큼 정직하고 공평한 운동은 없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최후까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천부적인 재능이 요구되지만 별도로 굵은 땀방울을 필요로 하는 스포츠가 복싱이다.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고 믿었다. 시작만 하면 순풍에 돛단 듯이 술술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학의 나이에 학문에 뜻을 두기보다는 운동 쪽으로 눈을 돌린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 본인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기에 열정이 넘쳤다.아마추어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프로로 직행하고자 했다. 복싱이라는 경기가 열정과 의지만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안 것은 2년 뒤였다. 출발점을 최우수 신인왕으로 잡았으나 선수 이름 등록도 해보지 못하고 꿈을 접어야 했다.

 

가장 원시적인 스포츠이기에 강한 체력이 요구된다. 1시간을 쉼없이 뛸 수 있는 체력을 가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적어도 매일 새벽에 10km 이상은 꾸준히 달려야 한다. 하루라도 거르면 도태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속할 수가 없었다. 오후에는 3시간 이상 운동을 해야 한다. 섀도 복싱은 물론 샌드백과 씨름해야 하고, 3라운드 이상 연습게임을 가져야 한다. 섀도 복싱과 샌드백하고는 친해졌으나 좀처럼의 연습게임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맞아도 물러서지 않는 독일병정을 꿈꾸었으나 현실은 그러하지 못했다. 우연찮게 연습게임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23회전이 그렇게 힘든 줄은 정말 몰랐다. 1회전은 그럭저럭 뛸 수 있었다. 2회전부터는 어떻게 뛰었는지 모를 정도였다.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들었다. 코치는 매우 잘했다고 칭찬을 했다. 하지만 철저한 인파이터를 꿈꾸었음에도 불구하고 은연중에 아웃복서가 된 자신에게 실망을 느꼈다.

 

헝그리 정신이 턱없이 부족한 자신을 발견했다. 슬펐다. 늦게 시작한 운동이기에 남들보다 더 독해야 하는데 의지가 부족했다. 마음만 앞서갈 뿐 몸과 행동은 따로 놀고 있었다. 서서히 자신의 능력에 대해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많은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독일병정의 꿈을 접기로 했다. 자신이 지닌 능력을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꿈을 접는다는 것이 그렇게 슬픈 일인지 몰랐다. 며칠을 마음속으로 울었는지 모른다. 모든 게 허탈했다.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운동을 계속하지 않은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챔프가 될 수 있는 자질을 타고나진 않았다. 그 당시엔 자신을 정확히 판단할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았기에 그저 마음만 앞서가고 있었던 것 같다. 후천적인 노력으로 부족한 자질을 극복해야 하나 솔직히 그러지도 못했다. 아마 그 길을 계속 걸었다면 더 큰 좌절을 맛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 그 시절의 순수와 열정이 그립다. 꿈을 향해 자신을 내던질 수 있다는 것은 행복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와서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뜨거운 열정을 보였던 그 시간마저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만약 다시 한 번 그 시간이 주어진다면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걷고 싶다. 설령 챔프가 되지 못하고 큰 좌절을 맛본다 하더라고 끝까지 도전하는 길을 택하고 싶다. 독일병정의 꿈을 접고 난 후부터 사각의 링에서 승리자로서 포효하는 꿈을 꾸지 못하고 있다.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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