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들은 한때 ‘딴따라’라 하여 천대받았다. 딴따라는 연예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청소년들로부터 선망을 받는 인기 직업 중의 하나이다. 딴따라 세계에 발을 들여 놓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퍼붓기도 한다고 하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태어나서 두 번째로 자신의 의지로 세운 꿈은 연예인이었다. 특별한 준비도 없이 눈에 보이는 그 화려함에 이끌리어 선택한 꿈이었다.
사실 대학생활은 꿈꾸지도 않았다. 조국 근대화의 기수니 뭐니 하면서 어린 청춘들을 현혹한 공업화 정책에 이끌리어 공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가정형편상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보다는 취업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앞서 있었다. 정부의 대대적인 선전과는 달리 장밋빛 청사진이 펼쳐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1년이 지나면서 대부분의 친구들이 공업고등학교로의 진학을 후회하는 빛이 역력했다.
아마 독일병정의 꿈을 갖게 된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만들어낸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불확실한 미래를 바꿔보기 위해 도전하였지만 생각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 날개짓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꿈을 접으면서 허탈감을 이겨내기 위해 미친 듯이 공부했다. 남들은 3년을 준비하여도 들어가지 못하는 대학문을 3개월 노력으로 들어갔으니 기본적인 머리는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딱히 국어국문학과를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니다. 점수에 맞추어 지원하다보니 선택하게 됐다. 문학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우리말이기에 수업하기 편할 것 같아서 선택했다.당시에 어머니는 가정형편을 고려하여 2년제 교육대학 진학을 종용했다. 하지만 2년제보다는 4년제가 좋을 것이라는 단순 무식한 생각으로 어머니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진로 문제는 학교를 다니면서 결정하자는 생각을 했다.
졸업후 진로는 교수, 공무원, 군무원, 소설가, 시인, 방송국 구성작가, 신문사 기자, 언론인, 출판사, 회사원 등이었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분야는 한군데도 없었다. 한심한 일이었지만 공부로 승부를 거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부족한 만큼 더 치열하게 도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쉽게 살려고 했던 것 같다. 세월을 헛되이 보낼 틈이 없었는데 한 마디로 한심스러웠다.
연예게에 발을 들여놓는 방법으로 연극 동아리를 생각했다. 하지만 시덥지 않은 자존심 때문에 입문을 포기했다. 동아리 문을 두드려 보았더니 처음 해야 할 일이 포스터 붙이는 일과 바닥 청소였다.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가는 것이 정석인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결정적인 것이 있었다. 동갑내기 친구들에게 선배님이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다는 꼴같잖은 성격 때문에 발을 들여 놓지 못했다. 이 성격은 대학생활 내내 동아리 생활을 거부하게 만들었다.
사실 반드시 연예인이 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접근했던 것은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화려함에 이끌렸으며, 특출나게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처음 문을 두르린 곳은 개그계였다. 코미디 전성시대에서 개그시대로 자리바꿈을 하던 시절이었다. 가볍게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개그가 신선하게 다가섰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언어를 적절히 버무리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모 방송국의 개그맨 공채가 공고됐다. 반남반녀의 컨셉을 가지고 도전하기로 했다. 여러 날 신중을 기해 시나리오를 만들고 각색했다. “개골산 산신령님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고운 눈망울에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청개구리 양을 보내주세요. 개골산 산신령님이 맺어준 나의 사랑 청개구리 양 내 말 좀 들어보소.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진수성찬 못 차려도 영원히 변치 않는 이 사랑 드리겠어요”라는 자작곡까지 동원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
방방곡곡에서 숨은 인재들이 다 모여들었다. 그들이 보여주는 끼와 아이디어에 반남반녀의 컨셉이 퇴색됨을 느꼈다. 하지만 기죽지 않고 개골산 산신령님이 소원을 들어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준비한 모든 것을 펼쳐보았다. 설렘 반 기대 반으로 심사평에 귀를 기울였다. 심사위원은 웃으면서 개그맨보다는 가수 하는 것이 낫겠다는 평을 하였다. 또 한 번 미역국을 먹었다.
그 이후 개그에 대한 도전을 계속 하지는 않았다. 공채에서 보았던 다른 친구들의 끼와 열정에 주눅이 든 점도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자라면 누구나 통과의례로 겪어야 하는 군에 입대했다. 27개월간 군 생활을 하면서 개그맨에 대한 열정은 식었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개그 능력의 한계를 알았던 것이다. 사실 목숨 걸고 도전한 것이 아니었기에 독일병정의 꿈을 접었을 때처럼 허탈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특별한 아쉬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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