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소한일상/건강지킴이

담배 끊은 것은 내 인생 최고의 작품

by 유일무이태인 2023. 2. 6.
728x90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잘한 것을 하나 말하라고 하면 지체없이 담배를 끊은 것이라고 말한다. 담배를 피울 당시에는 담배가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주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최고의 약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정말 담배만 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담배는 정말 백해무익하다.

 

내가 담배를 본격적으로 접한 것은 군대 가서였다. 고딩 때는 한 번도 입에 대지 않았으나 졸업 후에 몇 번 접하게 되었다. 나의 사십 육년 지기 중에 한 명인 친구가 군 휴가를 나왔을 때로 기억된다. 어차피 군대 가면 배우게 되는 데 미리 펴보라고 권하여 얼떨결에 피웠던 것 같다. 처음 피웠을 때는 쓰기만 해서 왜 이런 것을 피우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후 군대 가기 전까지 몇 번 더 담배를 접하게 됐다.

 

친구 말대로 군대 가니 자연스레 담배를 접하게 됐다. 군대가 주는 압박감과 피로감 그리고 무료감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가 담배였던 것 같다. 발칸포병으로 복무하였는데 포상의 경계근무가 일과의 반 이상을 차지했다. 정말 하루하루가 더디게 더디게 흘러갔다. 사실 그때는 담배를 피우던 피우지 않던 한 달에 담배 한 보루가 무상 지급되던 시절이었다. 자연히 담배와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군대에서 담배의 인이 박히고 나니 제대 후에 쉽게 끊을 수가 없었다. 사실 제대 후 끊어보려고 노력하긴 했다. 담배와 라이터를 몇 번 버리기까지 했으나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금단증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다시 접하게 됐다. 22살에 배운 담배는 마흔이 넘어설 때까지 계속됐다.

 

20여 년을 친구처럼 가까이 했던 담배를 멀리하게 된 것은 직장 내에서 금연운동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최고경영자가 금연을 결심하면서 직원들에게도 금연을 하도록 명하였다. 사무실에서 아무 때나 필 수 있던 담배를 금연 장소를 만들고 그쪽에서만 흡연하도록 한 것이다. 총무 업무를 수행했던 나는 졸지에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아무리 최고경영자가 명을 하였다고 해도 그것을 받들 필요가 있냐는 원망이었다. 원망 아닌 원망을 들으면서 그들에게 이번 기회에 금연운동에 도전해보라 권하면서 시범 케이스가 되기로 했다.

 

결과론적으로 말하면 최고경영자는 금연에 성공하지 못했으나, 나는 성공했다. 술 마실 때, 당구 칠 때, 고스톱 칠 때 몇 번의 고비가 있었으나 무사히 이겨낸 것이다. 금연에 성공하기까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유혹이 많았으나 그것들을 이겨내고 담배를 멀리하게 된 것에 대해 뿌듯한 자부심을 느낀다. 지금은 건강 때문에 담배를 끊은 친구들이 많으나 그 당시만 해도 금연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독한 놈, 의지의 한국인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어언간 담배를 끊은 지 20년이 넘는다. 내가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는 담배 값이 500원이었다. 지금은 담배 값이 4,500원이니 9배나 오른 것이다. 만약 금연을 성공하지 못했다면 한 달 담배 값이 솔솔치 않게 들어갔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금전적인 혜택보다는 내가 금연을 성공하였기에 담배로 인한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더 살갑게 다가선다. 담배를 끊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나 그래도 과감히 도전해 보라고 권하는 것은 담배를 필 때보다 담배를 끊었을 때 인생이 더 풍요로워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어렵겠지만 나도 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한 번 도전해 보기 바란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