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의 『내일』은 출판사 밝은세상에서 2013년 12월 5일 출판한 장편소설이다. 『내일』은 심리적 서스펜스, 가장 친밀해야 할 부부라는 인간 관계 속에서 겉모습, 가식이 증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쫓고 쫓기는 한 편의 드라마로서 크게 여섯 개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 우연한 만남
2. 평행선
3. 겉보기
4. 갈 곳 없는 여자
5. 잘못된 선택
6. 경계를 넘어서
2010년 12월 24일.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철학 교수 매튜 샤피로. 유능한 외과의사 아내 케이트가 죽고 1년 뒤 벼룩시장에서 중고 노트북컴퓨터를 구입하게 된다. 하드디스크에 남아 있는 여자의 사진과 아이디를 보게 되고 사진을 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메일을 보낸다. 그 일을 계기로 아이디의 주인인 와인감정사 엠마와 채팅을 통해 대화를 시작하게 된 매튜는 엠마와 저녁식사를 하기로 약속하지만 서로 길이 엇갈려 만나지 못한다. 어느 한 쪽이 약속을 어긴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그들은 서로의 메일이 도착한 날짜를 보고 매튜는 2011년, 엠마는 2010년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되는데…….
2010년에 교통사고로 죽은 아내 케이트를 살려달라고 부탁하는 매튜. 이때까지만 해도 죽은 아내를 살리고자 하는 로맨틱 소설로 생각했었다. 엠마는 어떤 방법으로 게이트를 살려낼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난다. 완벽한 부부로 보였던 매튜와 게이트였지만 엠마가 밝히어낸 게이트는 자신의 첫사랑인 컴퓨터업계의 전설 닉 피치를 살리기 위해서 4년간 쇼윈도 부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던 것이다. 헬싱키 그룹이라는 희귀 혈액형을 타고난 닉 피치에게 심장의식을 해주기 위해 매튜에게 접근했고 사고사를 위장해 매튜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기욤 뮈소는 작가의 말을 통해 ”펜을 잡을 때면 나는 한 가지 원칙에 충실하고자 애씁니다. 나 자신이 읽고 싶은 소설을 쓰자. 내가 지어내는 이야기들이 사람들에게 읽는 기쁨을 선사하고, 진정한 기분전환의 시간이 되도록 하자는 원칙입니다. 나는 독자들을 꼼짝 못하게 매혹시키는 것이야말로 소설가가 지녀야 할 가장 우선시 되는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내일』도 이 원칙을 충실히 따른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앳된 얼굴, 짧은 머리, 사흘쯤 자란 수염을 자연스럽게 방치하는 매튜의 외모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물 빠진 청바지, 낡은 가죽부츠, 목까지 올라오는 풀오버 차림을 즐겨 입는 매튜 스타일은 교수라기보다는 차라리 박사 과정 대학원생에 가까워 보였다. 매튜의 인기는 잘 생긴 외모보다는 차라리 유창한 말솜씨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p12)
하버드스퀘어는 온갖 상점들이 밀집해 있어 늘 벌집처럼 부산스러운 느낌을 주는 광장이었다. 서점과 작은 식당, 테라스를 구비한 카페 등지에서 하버드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은 이 세상을 전복시키겠다는 꿈을 키우거나 강의실에서 못 다한 토론을 이어가곤 했다.(p18)
에어프릴이 백미러를 통해 베로니카 레이크처럼 구불거리는 앞머리가 오른쪽 눈썹을 살짝 덮도록 매만지며 말했다. 머리 손질이 끝나자 핸드백에서 루즈를 꺼내 신속하게 입술을 칠한 다음 몸에 착 달라붙고 앞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티셔츠의 빨간 가죽재킷의 옷매무새를 매만졌다. 그 결과 에이프릴 특유의 팜므파탈 룩이 완성되었다.(p21)
매튜는 두 눈을 감고 눈꺼풀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마음을 더 진정시키려면 담배를 한 대 피워야 할 듯 했다. 차 밖으로 나온 그는 도어를 잠그고, 인도를 따라 몇 발짝 걸어가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고 연기를 한 모금 길게 빨아들였다. 니코틴의 쌉싸래한 맛이 느껴지면서 심장박동이 정상으로 되돌아오는 듯했고,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부드러운 가을 바람에 얼굴을 맡긴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담배 맛을 음미했다. 나뭇잎 사이를 뚫고 다가선 오후의 따스한 햇살이 얼굴을 간질였다.(p25)
매튜는 일백 평방미터쯤 되는 공터에 모여든 구경꾼들 틈에 끼어들었다. 그와 비슷한 또래 남자가 물건을 팔고 있었다. 네모난 안경을 낀 남자는 심드렁한 얼굴로 사람들의 시선을 애써 피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통 검정색 차림이어서인지 퀘이커교도처럼 엄격해 보였다. 남자 옆에서 누런색 샤페이 종 개 한 마리가 고무로 만든 인조 뼈다귀를 열심히 물어뜯고 있었다.(p26)
엠마에게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이를테면 악마의 유혹일 수도 있었고, 중독일 수도 있는 뭔가가 그녀를 사랑해서는 안 될 남자의 품으로 떠밀었다. 그런 관계들이 그녀가 갈망하듯 보호받는 느낌이나 정서적 안정감을 가져다줄 수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맹목적으로 빠져들곤 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신이 선택한 결과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지만 늘 같은 길을 걸어왔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부정한 유부남들의 공범, 타인의 가정을 파괴하는 파렴치한 여자가 되고 말았다. 물론 그녀의 가치관이나 열망에 비춰보자면 결코 원하지 않은 결과였다.(p38)
거울 안에 살짝 웨이브 진 갈색머리에 밝은 초록빛 눈동자, 주근깨가 드문드문 박힌 날카로운 콧날의 소유자인 서른세 살짜리 여자가 무심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기분이 몹시 좋은 날, 엠마의 얼굴에서는 케이트 베킨세일 혹은 에반젤린 릴리 같은 분위기가 살짝 느껴지곤 했는데 오늘은 그런 날이 아니었다.(p40)
에이프릴이 계단을 내려오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외출을 하려는 듯 옷을 갈아입은 그녀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화려하고 근사해보였다. 현기증이 날 만큼 굽이 높은 킬 힐, 가장자리를 와인색으로 장식한 시스루 상의, 에나멜가죽 반바지, 불투명한 스타킹, 소매에 징이 박힌 짙은 색 가디건 등 한 가지씩 보자면 대단히 괴상망측한 스타일이었지만 에이프릴이 입으면 왠지 멋스러운 느낌이 났다. 에이프릴은 페티시스트 같은 취향의 옷을 아주 자연스럽게 소화해 내는 재주가 있었다. 머리는 쪽을 지어 올리고 은은한 광채가 도는 자개 빛깔 파운데이션을 바른 그녀의 얼굴에서 선한 핏빛 루주를 칠한 입술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p49)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엎어 놓은 밥공기처럼 자른 머리, 창백한 안색, 두꺼운 뿔테안경을 착용한 애송이 연수생이 잔뜩 주눅 든 모습으로 엠마의 눈치를 살폈다. 연수생은 맨발에 조리를 신고 있었고, 구멍이 난 진 바지에 가끔이나마 세탁을 해서 입는지 의심스러운 후드 티에 마블 티셔츠를 받쳐 입은 차림새였다.(p85)
엠마는 그의 뒤에 서 있는 여자를 보았다. 그의 아내 케이트였다. 날씬한 몸매의 젊은 금발 미녀. 케이트는 그저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완벽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부드러운 모성애와 신비스러운 느낌이 묻어나는 귀족적이고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풍겼다. 맑고 투명한 눈, 알맞게 튀어나온 광대뼈, 화사한 안색, 육감적인 입술, 히치콕 영화의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쪽진 머리 등……. 그녀 옆에 있으면 어느 여자라도 저절로 주눅이 들 듯했다.(p170)
눈은 녹았고, 공기는 건조하고 차가웠지만 금방이라도 깨질 듯 팽팽하게 드리워진 보스턴의 금속성 하늘 한가운데에서 햇빛이 찬란하게 빛났다.
엠마는 꽁꽁 언 손을 녹이기 위해 호호 입김을 불었다. 입에서 나온 허연 입김이 눈앞에서 하늘을 향해 올라가더니 이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p209)
검은 진 바지에 밝은 빛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목플라 차림에 가장자리에 양털을 댄 가죽재킷을 입은 남자였다. 얼굴이 갸름한 남자의 얼굴에는 사흘쯤 면도를 하지 않은 듯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 있었다. 황금색 뿔테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 가뜩이나 갸름한 남자의 얼굴이 더욱 작아 보였다.(p214)
매튜가 방금 전에 문을 연 수리 센터의 첫 손님이었다. 카운터 뒤에서 왕년의 히피가 막 아침식사를 끝내는 중이었다. 어림잡아도 육십은 넘어 보이는 주인은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는 어울리지 않게 쿠바국기가 새겨진 티셔츠 위에 앞단추를 모두 푼 가죽조끼 차림이었다. 물기를 뺀 진 바지 위로 살이 삐져나와 출렁거렸다.(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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