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처지지 않는 직장인이 되기 위해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소홀히 하던 시절이 있었다. 오직 먹고 사는 문제에 목숨을 걸어야 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산 입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는 속담을 철석같이 믿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정말 가진 것 하나 없이 맨몸으로 맨땅에 헤딩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솔직히 가정의 소중함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이 시절의 부인들은 남편을 회사에 빼앗긴 것에 대해 원망하지 않았다. 집안 일보다는 회사 일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동조하며 살았다. 다소 가정을 소홀히 한다 해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이해했다. 자식들에게 보릿고개의 아픔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그들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밤낮으로 일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불도 채 되지 않는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였다. 36년간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수탈당했던 치욕스러운 역사를 지니고 있는 나라였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뿐 동족상잔으로 국토가 두 동강 난 나라였다. 자본도 없고, 자원도 없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나라였다. 신이 포기한 최극빈국의 나라가 세계경제 11위 규모로 성장했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그간의 고생을 위로하고 성공을 자축하며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샴페인을 터트렸다. 모두가 그럴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내지 못하고, 자기 몫을 찾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모든 것이 틀어졌다. 자기 몫 찾기는 황금만능주의와 개인이기주의랑 결탁하면서 경제를 핍박했다.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경제는 침체되고 급기야 국치라 불리는 IMF 사태를 맞이했다.
사실 IMF 사태는 국제정세를 오판한 위정자와 정부 각료들의 잘못이었으나 그 불똥은 서민들이 뒤집어썼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노력으로 IMF 사태를 극복했지만 후유증은 심각했다. 평생직장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많은 직장인들이 구조조정의 격랑에 밀려 직장을 떠나야 했다. 살아남은 이들도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감에 몸을 떨어야 했다.
무한경쟁의 시대가 심화되고, 경쟁력을 갖춘 기업만이 살아남는 구조로 변했다. 기업들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개혁과 혁신의 기치를 내걸고 숨 가쁘게 질주하고 있다. 기업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미명하에 따라가지 못하는 구성원을 과감히 정리한다. 기업의 필요에 의해서 선발하였으나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다.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구고조정이 일상화된 시대가 되어버렸다.
사실 구조조정이 능사가 아닌데 보도의 칼날처럼 휘둘러지고 있다. 한강의 기적은 ‘우리’라는 울타리가 만들어낸 신화였다. ‘우리’안에는 회사 일을 우선으로 생각하던 희생정신과 서로를 보듬어 주는 따스한 정이 어우러져 있었다. 자기 몫 찾기와 IMF 사태의 영향으로 ‘우리’라는 울타리가 무너졌다. 그 이후 한국 경제는 정체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IMF 사태 극복 이후 잃어버린 희생정신과 정의 문화를 되찾는 것이 우선이었으나 대부분의 기업들은 실기했다. 구조조정은 경영상의 어려움을 근로자들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다. 솔직히 경영상의 어려움은 근로자들이 잘못해서 발생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경영자가 지시한 일들을 묵묵히 수행할 뿐이다. 굳이 잘잘못을 따진다면 경영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경영자의 책임이 더 크다.
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동력을 찾기 위해 나름대로 고민하고 있다. 선진기업의 사례들을 열심히 벤치마킹하지만 토착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외부보다 내부로 눈을 돌려봄은 어떨는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고 하지 않는가.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던 ‘우리’라는 울타리를 재생시킬 수만 있다면 체질화되지 않는 외국 사례에 목을 매는 잘못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회사와 종업원은 일심동체이다. 자기 몫 찾기에 혈안이 되기보다는 파이를 크게 만들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나만 손해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빠지기보다는 나의 작은 희생이 더 큰 선물을 안겨준다는 긍정의 마인드로 세상을 바라보자. 회사가 조금 어려워졌다고 해서 종업원을 내치기보다는 서로를 보듬으며 힘과 지혜를 모아 난국을 함께 극복해 나간다면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다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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